국사암
국사암

국사암

동일신라 723(성덕왕 22)년에 운암사(雲巖寺)의 삼법화상이 터의 지기가 뛰어나므로 육조의 정상을 봉안하고 당우를 지은 것이 암자의 시초입니다.

그 후 110년이 지나서 진감선사(眞鑑禪師)가 창건했습니다. 국사암이라는 사명(寺名)도 진감국사와 관련이 깊은데, 신라 민애왕이 진감선사를 스승으로 봉하여 진감국사라 칭함으로 인해 국사암이라 부르게 됐습니다.
또한 상주 장백사(현 남장사)에서 지리산으로 온 진감선사가 삼법화상의 난야터에 당우를 세운 것이 국사암으로, 오히려 본사인 쌍계사보다 먼저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이상은 여러 이설이 있음) 또한 암자에는 진감선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두었더니 살아서 나무가 되었다는 천이백년이 넘은 느티나무(사천왕수四天王樹 경상남도 보호수)가 있어 이를 증명하는 듯합니다.

1894년에 작성된 ‘지리산 국사암기(智異山 國師菴記)’에 따르면, 1711(숙종 37)년에 의삼(義森)스님이 홍운(弘運) · 연민(衍敏) 두 스님과 함께 1714년까지 전각을 짓고 푸른 기와를 얹어 4존상을 봉안 · 장엄했습니다.
뒤를 이어 용담(龍潭) · 하산(何山) · 용은(龍隱)스님 등이 차례로 중창 · 중수를 거듭하였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이 없어 어떠한 형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문수전文殊殿 · 인법당人法堂 · 산신각山神閣 등이 있는데, 인법당 · 문수전 · 산신각 · 대문 등은 1980년경에 고산스님이 모두 새롭게 중건한 것입니다.
문수전에는 최근 들어 목조로 조성한 문수 · 보현보살과 동으로 조성한 지장보살좌상을 비롯하여, 문수 · 보현보살탱 및 신중탱 등이 있습니다.
인법당은 ‘ㄷ’ 자형 구조로 되어 있고 여러 전각의 현판이 있는데, 편액에는 국사암 · 명부전 · 칠성각 · 옹호문 · 염화실 등이 있어 예전 암자의 규모를 짐작하게 합니다.
주불로 모신 목조여래좌상은 조선 후기에 조성한 것입니다.

국사암의 탱화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781(정조 5)년에 조성된 아미타후불홍탱과 제석천룡탱은 통정(通政) 성찰(晟察)스님이 주지로 있을 때 취일(取一)스님이 화주가 되어 조성한 것입니다.
전자는 금어 함식(咸湜)스님이 그린 것으로, 함식스님은 이외에도 같은 해에 그린 쌍계사 삼세후불탱 3축과 삼장탱 조성에도 동참했습니다.
후자는 화기에 ‘제석천룡합위帝釋天龍合位’라 기록되어 있어 제석천룡탱임을 알 수 있는데, 금어 평삼(評三)스님과 찰삼(察森) · 극찬(極讚) · 출정(出定) · 계탁(戒卓) 스님 등이 조성했습니다.
평삼스님은 쌍계사 삼세탱 가운데 아미타탱과 석가모니탱에는 편수로 참여했고, 약사탱에는 화주로 참여했으며, 삼장탱은 화주 겸 편수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1897년에 조성된 칠성탱의 화기를 보면 본암질로 24명의 스님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많은 스님들이 머물면서 수도 정진하였던 것으로 짐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