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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관음성지를 찾아서-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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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sanggyesa 작성일10-12-15 14:05 조회2,5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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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과 벚꽃길, 아름다운 차밭을 지나면 쌍계사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맑은 계곡물이 일주문과 함께 방문객을 맞이한다.

섬진강를 따라 가다가 화개(花開)를 거쳐 쌍계사로 향한다. 꽃이 핀다(花開)는 마을이름답게 화개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6km 구간은 벚꽃나무 1200여 그루가 터널을 이루어 상춘객들에게 유명세를 타는 곳이다.
꽃은 떨어졌지만 푸른 나뭇잎들이 시원한 그늘을 선사하고 있다.
쌍계사 매표소를 지나면 깊은 숲과 아름다운 계곡이 펼쳐진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 절반 이상은 절로 올라갈 생각보단 일단 더위를 식힐 요량으로 계곡으로 내려가고 있다. 쌍계(雙磎)는 두 개울이 만나 쌍을 이룬다는 말이다. 두 개울이 만나고 좀 더 지나면 경상도 사람들과 전라도 사람들이 만나는 화개장터가, 화개장터를 지난 물은 섬진강으로 흘러들어 광양만에서 바다와 만나게 된다.

숲과 계곡이 선사하는 싱그러운 향기와 시원함을 만끽하며 절로 향한다. 삼신산 쌍계사 현판이 붙어 있는 일주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삼신산은 두륜산, 방장산과 함께 지리산의 또 다른 이름 중 하나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곧바로 금강문, 천왕문, 팔영루가 나온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길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고 대웅전까지 경사가 완만하게 이어지면서 상승의 느낌을 갖게 된다.

팔영루를 돌아서면 대웅전이 정면으로 보인다. 대웅전 아래 마당에 국보 제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가 중심에 서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탑비양식에 따라 거북받침돌은 머리가 용머리로 꾸며져 있으며, 등에는 6각의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직사각형의 몸돌은 여러 군데가 갈라져 있지만 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단아하면서도 생동하는 필체로 촘촘히 새겨진 글씨를 거의 알아볼 수 있다. 신라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최치원이 진감선사 혜소스님의 덕을 기리기 위해 887년 왕명을 받아 비문을 짓고 글을 썼다.


쌍계사는 선(禪), 차(茶), 범패의 근본도량이라 부른다. 이 모든 것인 진감선사와 연관이 있다. 스님은 804년 당나라에 갔다가 830년 귀국, 쌍계사에서 선종을 일으키고 850년에 입적했다. 스님은 중국에서 불교음악인 범패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스님은 범패를 잘해서 ‘구슬프고 상쾌한 곡조를 내니 천상의 신이나 부처님도 모두 기뻐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또한 쌍계사의 옛 이름인 옥천사를 중창하고 차나무를 심었다고 쌍계사지에 기록되어 있다.

탑비를 지나 계단을 올라 대웅전으로 향한다. 2007년 1월 새롭게 보수를 마친 대웅전은 1641년 벽암 각성스님이 중건한 이래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보물 제5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앙에 석가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불과 아미타 여래불을 사이사이에 관음, 세지, 일광, 월광 등 4대 보살님도 모셔져 있다.
참배를 마치고 나오니 대웅전 오른쪽 명부전 옆에 있는 마애부처님과 눈을 맞춘다.
1.35m 높이의 아담한 마애부처님은 풍만한 얼굴에 소박한 표정을 간직하고 있다. 너무나 정감어린 표정에 한걸음에 달려가 반갑게 인사를 올렸다. 자비로운 미소로 반겨주는 듯 하다.
진감선사는 중국에서 공부를 한 후 3년 동안 사방으로 뻗은 거리에 앉아 짚신을 삼아 널리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자신을 한껏 낮춘 스님의 미소가 이런 표정이 아닐까.
바람이 삼신산 숲을 흔들자 스님의 아름다운 범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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