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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꽃이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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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무 작성일05-07-25 04:55 조회12,2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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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꽃이 피다
 
봄이 갈 때가 더 아쉬운가 봄이 오는 때가 더 아쉬운가를 생각해보니, 내 경우는 늘 첫 봄바람에 더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것 같다. 오는 봄을 손꼽아 기다리기를 며칠, 첫 꽃 소식을 접하고 나면 꽃이 피기도 전에 그 꽃이 질 일을 먼저 가늠하여 벌써부터 그 아쉬움에 마음을 졸였던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올 해는 기다리던 꽃소식이 그리도 늦더니 날씨가 좀 수월해지기가 무섭게 모든 신록(新綠)과 방초(芳草)가 앞을 다툰다.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한번에 만발로 세상을 덮어버리니 아쉽고 말고 할 사이도 없이 꽃의 태풍을 만난 것 같다. 전에는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순서로 피고 지고 하다보면 꽃을 보는 재미로 한 달이 후딱이었는데, 올해는 순서와 시기를 가리지 않고 모든 꽃이 한달음에 달려오니 벙벙해진 어안은 이게 또 무슨 징후냐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예로부터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고 하여 계절과 자연에서 사람이 그를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도 있지만 올해 같아서는 이러한 가르침이 무색할 따름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꽃의 화려함과 아름다움 뿐이라 꽃이 무엇을 하는 물건인지는 잠시 잊고 지낼 때가 많다. 초목은 화려함으로 벌 나비를 청하고는 자신의 종족을 번식하는 일을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러니까 화려한 꽃잎은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치열함의 현장인 것이다. 종류와 때를 가리지 않은 올해의 꽃의 향연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하고 각박한 경쟁의 현장일 것인데 우리 눈과 마음이 그냥 꽃에 취해 눈의 즐거움만 쫓고 있는 셈이다.


몸이 바다 속에 있으니 물을 보려하지 않고,

身在海中休覓水

해가 고개 위에서 지나니 산 찾기를 멈췄구나.

日行嶺上莫尋山


쌍계사 강당 주련에 있던 구절이다. 마음에 와 닿아 언젠가 받아 적어왔다. 타성(惰性)은 언제나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할 대목이다. 꽃의 아름다움에만 가 있던 마음을 거두니 두서없고, 치열한 올해의 꽃의 향연이 우리의 세태를 닮는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무거운 요즘이다.

김현정/상명대 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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