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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항일운동, 그 현장] 쌍계사 4·6, 4·11 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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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쌍계사 작성일19-03-15 22:07 조회1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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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김주석 스님 ‘주동’

학생, 청년들과 만세 거사
영호남에 독립 의지 ‘전파’
자료수집 유공자 포상 과제

아름다운 십리 벚꽃길을 자랑하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신라 성덕왕 22년(723년) 삼법(三法)스님이 육조혜능 선사의 정상(頂上)을 모신 이래 1300년의 세월을 이어오는 쌍계사가 있는 고장이다. 민족의 정기가 서린 지리산 쌍계사는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스님들의 충절이 깃든 도량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마곡사에서 출가하기 전에 머문 인연도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 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화개장터’라는 제목의 가수 조영남 노래다. 가사는 김한길 전 국회의원이 지었다. 쌍계사에서 약 10리 정도 떨어진 화개장터는 이 노래 가사처럼 섬진강을 두고 전라도와 경상도가 이웃해 있다. 조선 중기 이후 전국에서 열손가락 안에 들 만큼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 장터이다. 여수, 남해 등 바다에서 수확한 멸치와 김, 그리고 대구 영천 등 육지에서 거둔 농산물을 가득 싣고 온 상인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다. 멀리 전라북도와 충청북도에서도 장꾼들이 오간 화개장터는 세상 소식이 오가는 소통의 중심지였다.

“막걸리 맛이 어찌나 좋은지 배가 부르당게” “사람 일을 누가 알간듸, 인연 있음 또 볼 터이지” 전라도와 경상도의 짙은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곳이다. 화개(花開). 꽃이 피고, 꽃 문이 열린다는 뜻을 지닌 아름다운 지명(地名)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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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교 건너편으로 옮긴 지금의 화개장터.

지금부터 99년 전인,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난 후 하동에도 독립만세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었다. 쌍계사와 화개장터 사이에 자리한 정금리(井琴里) 청년들을 중심으로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비밀리에 만나 거사를 모의했다.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태극기도 만들었다. 쌍계사 김주석(金周錫, 23세)스님과 학생 양봉원(梁鳳源), 정상근(鄭相根, 또는 丁湘根)을 비롯해 이강률(李康律, 17세), 이정수(李汀秀, 30세), 임만규(林萬圭, 27세), 이정철(李正哲, 22세) 등 청년들이 맨 앞에 서기로 했다. 양봉원과 정상근은 쌍계사 경내 사립보명학교(私立普明學校)에 다니는 학생으로 추정된다. 보명학교는 쌍계사가 1910년 근대교육을 위해 설립했다.

드디어 4월6일. 녹음(綠陰)으로 우거진 지리산을 비추는 햇살이 거사를 격려하는 듯 했다.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 등 원근 각지에서 많은 상인과 주민이 모여들었다. 이미 만세운동 준비를 마친 김주석스님을 비롯한 학생과 청년들도 장터에 들어갔다. 지금은 화개면사무소 인근에 화개장터가 있지만, 본래 화개장터는 화개교 건너편 버스터미널 인근이었다. 1960년대 후반까지 이 자리에서 장이 열렸지만, 지금은 ‘화개면 탑리 662-7’로 화개장터를 옮겼다. 

화개면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조정숙씨(67세)는 “시집온 지 50년이 되었는데, 일제시대 화개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30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섬진강 물이 3~4번씩이나 들어와, 화개장터를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말했다. 이전하기 전까지 버스터미널과 쌍계로 주위에 화개장터가 열렸다고 증언했다.

긴장된 시간이 흘러갔다. 드디어 만세운동을 결행해야 할 순간이 됐다. 김주석스님 등 학생과 청년들은 장이 끝나갈 무렵인 오후6시 태극기를 높이 쳐들며 힘차게 외쳤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이어 군중들도 두 손을 들고 독립만세를 같이 소리쳤다. 깜짝 놀라 화개장터에 들이닥친 일본 경찰들이 만세를 외치는 청년과 주민을 닥치는 대로 연행했다. 김주석스님을 비롯한 학생과 청년 등 주동자들이 검거됐다. 군중은 강제로 해산 당했다. 그러나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요충지에 자리한 화개장터였기에 만세운동 소식은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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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쌍계사 전경.

이날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200~300명이라고 전한다. 일제 당국의 기록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실제 참석 인원은 300명을 웃돌았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주동자들은 검거됐지만 화개장터 만세운동의 여파는 이어졌다. 이튿날인 4월7일 하동보통학교 4학년 박문화 등 160여 명의 학생들이 소풍을 가는 길에 화개장터에서 만세를 불렀다. 4월6일 거사에서 검거를 피한 이강률, 이정수, 이정철, 임만규 등이 4월11일 제2차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화개면장과 면 직원들의 사직을 요구하는 권고문을 만들어 면사무소 앞에 게시하는 등 분위기 고조에 힘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4월11일 당일 화개장터에서 4명이 검거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4월6일과 4월11일 체포된 이들은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보안법 위반과 협박이란 죄목으로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과 마산지청에서 재판을 받았다. 쌍계사 김주석스님 징역6개월을 비롯해, 이정수 징역10개월, 이강률·이정철·임만규 징역8개월, 양봉원 집행유예3년, 정상근 집행유예의 형을 받았다. 해방 후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이정수)과 대통령 표창(임만규, 이강률)이 추서됐지만 대다수가 아직까지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1896년 2월20일 생으로 알려진 김주석스님의 이후 행적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김주석스님을 비롯해 당시 함께 만세운동에 나선 이정수, 이강률, 이정철, 임만규 등의 판결문이 전하고 있다. 향후 보다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해 스님을 비롯한 항일투사들의 공을 기려야 할 것이다.

충절의 고장인 하동군은 화개장터 시위 외에도 3·1운동 직후 독립만세운동이 수차례 일어났다. 1919년 3월21일 횡천면 여의리에서 주민 8명이 시위를 벌였지만, 곧 진압됐다. 3월23일 하동읍 시위에 이어, 3월24일에는 가종면 안계리에서 60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군중이 흩어지지 않자, 일본 경찰이 총을 발포해 강제 해산시켰다고 한다. 

이밖에도 3월29일 가종면 안계리 2차 시위, 고현면 주교 시위, 4월3일 북천면 직전리 시위 등이 벌어졌다. 600여 명이 참여한 주교 시위도 일본 경찰의 발포 후에야 군중이 해산됐다. 3·1운동 직후 하동에서는 8개 지역에서 12차례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교통과 통신 사정이 좋지 않아 서울에서 선포한 독립선언서를 구하지 못해, 독자적으로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배포했다. 쌍계사 김주석스님이 학생, 청년들과 주도한 화개장터 시위는 하동을 대표하는 만세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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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장터 삼일운동 기념비.

화개장터에는 4·6, 4·11만세운동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화개장터 삼일운동 기념비’로 무궁화를 새긴 사각형 화강암 기단과 비신 위에 지붕을 갖춘 양식이다. 2001년 2월에 건립한 비석의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 “… 쌍계사에서 화개장터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군중을 지도한 화개청년들이 있었다. … (김주석스님 등) 일곱 투사들이 사전에 태극기를 제작하여 상인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시위군중을 지도하니 전남지역에서 온 상인들 전북, 충청도에서 상업 차 내려온 상인들까지 합세하여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 일곱 의사들은 조국과 민족을 구하고자 충의 정신과 항일독립 정신을 몸소 실천하신 훌륭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이었다.”

한편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478번지에 자리한 ‘하동독립공원’의 ‘하동 항일독립운동 약사’ 비문에도 김주석스님을 비롯한 화개 청년들의 항일투쟁을 기리는 문구가 선명하다. “… 1919년 3ㆍ1독립만세운동에 즈음한 하동의 만세시위는 … 김주석, 정상근, 양봉원, 이정수, 이정철, 이강율, 임만규, 김지준, 정재옥 등 많은 지사들이 관내 각지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 비폭력 항거로 일제 경찰을 놀라게 했다.” 

“만세 함성 못 듣는 괴물들이여” 

 화개면 직원 사직 ‘권고문’

쌍계사 김주석스님 등이 주도한 4·6 화개장터 만세운동에 이어 4·11 제2차 만세운동을 준비한 이강률, 이정수, 이정철, 임만규 등이 화개면사무소 앞에 붙인 권고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세기 문명의 목봉(木棒)을 완악(頑惡)한 화개면 직원의 머리에 맹하(猛下)하면서 고(告) 한다. 너희 직원들이여! 오늘날 독립만세 함성이 지진천동(地震天動)하여 요괴은둔(妖怪隱遁)할 수 없고 완추진소(頑醜盡消)하고 야만적 사물을 휘곽쾌소(揮廓快掃)할 것이다. 만세의 함성을 듣고도 듣지 못하는 체하는 너의 괴물들이여! 추미(醜美)를 진솔(眞率)하여 영향을 반도로부터 영절(永絶)시켜라. 너희들이 만일(萬一) 명완무치(冥頑無恥)하여 아직 차피(此彼) 왜(倭)의 사무를 폐지하지 않고 유예(猶豫) 결(決)하지 않으면 드디어는 뇌정(雷霆)의 위력을 떨쳐 섬섬(閃閃)한 부월(斧鉞)을 휘둘러 반드시 오살(巴殺)할 것이다. 그런고로 후회하지 말라”

■ 참고자료: 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자료집>, 경남경찰부 <고등경찰관계적록>,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하동의 독립운동사>, <경상남도의 3·1독립만세 운동>,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사적지’, 대한민국 독립운동가 홈페이지(w3devlabs.net/korea).

[불교신문3403호/2018년6월27일자] 

하동=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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