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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조성택교수가 본 황우석 사태의 본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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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한후 작성일06-03-31 03:53 조회6,7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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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조성택 교수가 본 황우석 사태의 본질-2

지난 1월23일에 한겨레신문 인터뷰 내용을 "조성택 교수에게 고함"으로 항의하자,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교수가 한번 만나는 인연을 갖자는 개인적인 메일과 함께 조계종포교원 연찬회에서 발표하였다며 보내온 불교평론 2006년 봄 호 권두언 내용입니다. 조성택 교수 자신은 다음부터는 말로하지 않고 글로만 하겠다는 말을 하였으나, 글로 쓴 불교평론 2006년 봄 호 권두언 내용 또한 아래 내용과 같이 말로 한 내용과 거의 비슷하게 불교와 불교성직자와 불교신도들을 능멸하였으며, 여러 회원님들의 요구가 있어서 그 내용을 공개 합니다! 밑줄 치거나 굵게 한 부분이 저의 의견과 다른 부분입니다. 저의 반론 내용은 함께 게재한 "고려대 조성택 교수는 불교능멸발언 진상을 규명하라"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런 글을 올린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서 아직도 조성택교수가 사과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성택교수가 끝까지 무반응으로 대응한다면, 조교수가 나에게 보낸 조교수의 일류대학교수로서는 너무나도 부족한 논문에 대한 반론과 개인적인 메일과 다른 분들의 비판내용 까지도 순차적으로 공개 할 것이며, 차원을 달리한 비판으로 이 세상의 모든 불자들이 이 사실을 알 때 까지 조성택교수의 부당한 처사를 알린다는 사실을 미리 예고합니다!

2006년 3월 31일
서울특별시영등포구신길7동2054번지
노  한  후(르타 - rta) 두손모음
rohistra@hanmail.net 


“조성택 교수에게 고함”

총론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가톨릭과 기독교가 생명윤리를 내세워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서양 윤리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엄호사격과 함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전폭적 지원에 나섰던 한국 불교계의 황우석 감싸기가 멈출 기미가 없다. 줄기세포의 실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외부세력 음모론’을 제기했던 불교계는 줄기세포 연구가 총체적 조작과 사기극으로 판명 났지만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자고 외친다. ‘황우석 박사 지키기 재가불자들의 모임’을 이끌고 있는 동산반야회 김재일 회장은 “황 박사의 연구 재개와 원천기술 재현을 위한 100억원 재단 설립 범국민운동본부 설립” 방침을 밝혔고, <법보신문>에 따르면 성금 기탁 의사를 밝힌 스님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불교계의 내부 인사인 조성택 교수(고려대 철학과·불교학 전공)가 자신이 주간으로 있는 <불교평론> 2006년 봄호 권두언을 통해 “불교계의 황우석 감싸기 중단”을 요구하며 자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겨레21>은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에 대한 황 교수의 해명 기자회견이 열린 직후인 1월12일 오후 조성택 교수를 만나 불교계 내부를 향해 칼날을 세운 이유를 물어봤다.

반론 방법 - 한겨례 신문에서 신승근 기자가 조성택 교수님에게 질문한 1~13 항목까지를 각항목별로, 조성택 교수님 발언의 밑줄 친 부분을 가, 나, 다, 순서로 구분하여 반론하였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시어서 본토론 제의의 진의를 파악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오탈자와 누락, 중복된 반론에 대하여 깊은 이해 있으시기 바랍니다. 토론이 시작되면 다시 중개하겠습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의 많은 교정을 바랍니다.

1. 2002년엔 나 혼자 황우석을 지지했다
곧 나올 <불교평론>을 통해 불교계의 황우석 옹호 분위기, 특히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황우석 지지 발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이건 단순히 황우석씨에 대한 옹호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 가톨릭은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자신들의 종교적 생명윤리에 저촉된다는 것을 파악해 반대했지만, 동시에 그것이 주는 유용성을 살리려는 나름의 노력의 결과로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1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가톨릭이 역사상 사회 문제에 관여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다. 하지만 불교계는 세속 문제에 대해 말하는 논리가 약하고 역사적 경험과 노하우도 적다. 근 현대에 발생한 문제에 대한 대응도 상당히 미숙했다. 황우석 옹호는 종교 간 경쟁이 펼쳐진 현대적 다원주의 종교 체제에서 불교계가 지닌 콤플렉스가 작용한 것이다.

반론
가. 한 종교의 교리와 그 종교가 사회문제에 관여하여 축적한 노하우가 반드시 동일하다고만은 할 수없습니다. 뒤에서 조성택 교수가 말하는바와 같이, 우리는 세계사적인 사실에서 여러 번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 할 수가 있었습니다. 유신론인 가톨릭은 100년 주기로 개최되는 공의회라는 공식기구가 있어서, 전례를 포함한 교리에 대한 자체검증을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에서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100억이라는 큰 금액의 쾌척을 약속한 것은 조성택 교수님이 말하는 종교에서 가지는 가톨릭이 한국사회 문제에 대한 관여로 얻은 노하우와 같은 아주 작은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서양 의학과 동양의학의 차이가 점점 좁아져 가고 있습니다만, 해부의학인 서양 의학적으로 줄기세포의 연구가 필요하기는 한데, 7항에서 말하는 내용과 같은 이유 등으로 인하여, 역사적인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성체 줄기세포라는 가톨릭 나름대로의 유리한 교리적인 이론을 이미 도출하였으며, 이는 우주의 원리에 대한 변화되는 현상에 적응할려고 노력하는 가톨릭의 자체의 노력인 것이며, 그 근간이 바로 가톨릭의 교리인 것이기 때문에, 가톨릭은 교리의 자체 검증을 거쳤다고 생각함으로, 아무도 그런 사실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없으며, 말은 안하지만 오히려 역시 가톨릭  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하지만 유신론도 아니고, 무신론도 아닌 불교적 입장으로는 다른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겠지만 토인비가 이단자라는 지탄을 받으면서까지 미래의 세계를 지배하는 문화는 동양의 불교문화일 것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유럽에서 지금은 단두대행은 아니지만, 최소한 왕따 까지는 당할 줄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동양의학 권에 속하는 불교문화는 비교적 정적인 정신문화에 가깝습니다. 마음 하나로 우주와 자기 자신을 찾으니까요. 따라서 새로운 과학의 출현이라 표현 할 수 있는 줄기세포에 대하여 종주국에서조차 불교 자체에서는 전혀 거론이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황우석 박사님과 같은 훌륭한 애국적인 과학자가 있어서 이번에 거론이 된 것이며, 그 현실에 대한 한국불교의 교리적인 정립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총무원장이신 지관 큰 스님꼐서 하시었습니다. 성직자인 한 스님으로서 이시거나, 대한불교조계종단의 총무원장 큰스님의 자격으로서 이거나,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변화를 매우 중요시하는 불교의 교리에 합당한 이론이며, 불교의 종주국에서도 아직 수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문화를 흡수한 불교만을 알고 있는 저로서도 총무원장이신 지관 큰스님께서 불교 교리에 대하여 매우 큰일을 하시려는가보다 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종교적인 큰 사업을 조성택 교수님은 세속문제에 노하우도 적고, 근 현대에 대한 대응도 상당히 미숙하였으니 안 된다라는 뜻의 말을 하였습니다. 불교의 입장에서는 이번에 반드시 줄기세포에 대한 종교적인 입장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지관 총무원장 큰 스님의 말씀은 가장 합리적인 종교적인 입장임을 분명하게 먼저 말씀드립니다. 따라서 조성택 교수님의 말은 뒤에 제가 말하는 내용들과 같이 소아병적인 가치관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나. 현대적 다원주의 종교체제 라는게 무었입니까? 지구상에 종교의 원천이 그렇게 많습니까? 죄송하지만 제가 보는 지구상의 종교의 원천은 조성택 교수님이 아시는 것과 같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종파와 이와 유사한 집합체가 많을 따름이지요. 크게는 유신론과 무신론과 유신론도 무신론도 아닌 종교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불교는 유신론도 무신론도 아닌 종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보기로는 한국불교가 뒤에서 말씀드리는 역사적인 이유들로 인하여, 상당 기간동안을 선교와 교리발전 등의 내실화보다는 내부문제에 더 치중하여 생존 자체에만 급급 하는 우를 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좋은 예로서 저와 같이 새로운 불교신도 세력으로 분류되는 많은 사람들이 불교교리로 무장하고 개종 하여 온다는 것입니다. 불교로 개종한지가 일천한 제가 감히 조성택 교수님에게 불교 교리에 대하여 토론을 을 제기하게 된 것은, 불교 교리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현실 생활에 대하여 큰 도움과 비젼을 주고 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 사실이 지금의 한국불교가 하고 있는 선교의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줄기 세포연구에 관한 문제도 그러한 불교 자체의 변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조성택 교수님이 불교 공부를 할 때 보다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요? 그러함에도 "우리 뒤에는 아줌마 보살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변화를 매우 중요시하는 불교의 기본이론을 심하게 모욕하고, 불교교리 알기를 등한시하는 조성택 교수님은 아직 늧지 않았으니, 다른 과목을 전공하시는 것이, 불교와 조성택 교수님 자신을 위하여도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대학교에서 불교학을 강의 하시는 조성택 교수님 개인적인 자질 문제이지, 불교가 지닌 컴플렉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야를 넓혀서 보며, 불교신도들의 입장도 살펴보면서, 저의 반론에 대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다. 불교계 내부를 향하여 칼날을 세운 이유를 물었다는 질문을 하였는데, 이는 변화에 적응을 못 하는 조성택 교수님의 갈 길을 말한 것이지, 불교계에서는 조성택 교수님이 깨달음의 존재를 의심하는 무지와 아만에 대하여 반응을 보일 가치가 없었으리라 봅니다. 엄청난 힘을 가진 태풍의 핵심이 적막하고, 고요하듯, 조성택 교수님 스스로가 표현 한 것처럼 블랙홀이라고 느끼는 것이 사실 이라면, 지금 한국뵬교는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2. 구체적으로 어떤 콤플렉스를 말하는 것인가.

=서구에서는 불교가 과학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종교라며 관심을 갖고 있다. 이것이 지나쳐 불교가 과학적이라는 얘기까지 한다. 황우석 감싸기는 한국 불교가 서양이 불교를 보는 이런 관점을 너무 많이 받아들여 “우리 불교는 이런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기독교보다 더 현대적인 종교다”라고 내세우려는 의식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근대 이후 현재까지 우리 역사에서 기독교가 종교로서 한 역할과 비교하면 불교의 역할은 적다. 문화적으로 불교가 우수하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근대 이후 불교는 극히 제한적인 역할을 했고, 오히려 반사회적·반민주적·반민족적 행태를 보여 왔다. 이런 콤플렉스가 과학의 문제(황우석 사건)를 계기로 터진 것이다. 황우석 사건은 불교계의 호재였다. 무의식적으로 불교계가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 것이다. 불교가 교리적 측면에서 이런 문제에 기독교보다 좀더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는 좋은 지점으로 생각한 것이다. 불교와 과학은 다루는 세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호보완적일 수는 있지만 불교가 과학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조성택 교수
△ (사진/ 윤운식 기자)

반론
가. 서구에서 불교가 과학적이라는 말을 하니까 "기독교보다 더 현대적인 종교다"라고 내세우려는 의식이 강하게 콤플렉스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줄기세포 문제에 대하여 가톨릭 에서는 해부의학인 서양 의학상 필요에 의하여, 이미 이론적으로 교리정립을 가톨릭교리에 유리한 방향으로 하여 놓았으나, 동양이 원천지이어서 동양의학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불교에서는 줄기세포에 대하여 불교종주국에서조차 아직 이론적인 정립이 되어있지 않았으며, 거론조차 되지 않았으나, 황우석 교수님의 줄기세포연구 현실화의 가시화로 인하여 줄기세포에 대하여 교리적으로 정립하여야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는 한국불교가 새로운 과학 이론의 출현과 시대의 변화에 적응 할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고 저는 주장 합니다. 이런 큰일을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황우석 교수를 감싸고 있다고 생각하는 조성택 교수님의 소아병적인 사고방식을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과학의 출현에 대하여 종교로서는 새로운 교리의 정립을 반드시 하여야한다는 것입니다. 불교학 교수로서 시야를  넓히기 바랍니다.

나. 종교의 사회에 대한 역할론에 대하여, 기독교가 한 역할에 비하여 불교의 역할이 적었고 오히려 반사회적, 반민주적, 반민족적형태를 보여 주었으며, 이런 콤플렉스를 황우석 교수님으로 인하여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교는 역사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고려이후 이조시대의 억불정책과, 일제 강점기의 고난을 겪었으며, 해방이후로는 아시는 바와 같이 불교계에서는 "법 란" 이라고 칭하는 또 다른 고난을 겪음으로, 어떤 학승들은 승복을 입고 다니시기가 매우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고 그 말씀을 하신 스님 자신의 저서를 통하여 후술하시기도 하였습니다. 한국불교계 스스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역사적인 국가의 불행에 속한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반사회적, 반민주적이라는 말씀은 거기에 이유가 있었던 듯 합니다. 그러나 반민족적인 행태에 대하여서 그 내용이 일제 강점기의 일을 말한다면, 이는 조교수님의 소아병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반민족적인 행태는, 불교뿐만이 나니라 타 종교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종교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개성차이에서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엄연한 세계 4대종교입니다. 한 스님이 외도라고 하여서 불교전체를 외도라고 하여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불교 교리를 너무 폄하 하시지 마십시오. 깨달음의 존재자체를 의심하는, 얼토당토 않는 조교수님의 즉흥적인 요구에 대하여, 이를 교리화 또는 전례화 하여 신도들에게 제시한다면, 이는 분명한 사이비종교 일 것입니다. 저는 한국불교가 사이비종교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 불교와 과학의 다루는 세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호 보완적 일수는 있지만, 불교 자체가 과학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종교가 과학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신병원에 가서 누워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종교나 표현방식은 각기 다르지만, 감각(Sence), 지각(Perception), 느낌(Feeling), 인식(Recognigion), 표현(Expression), 소통(Communication), 변환(Transformation)등의 매우 다채롭게 일상적 사회생활을 통한 경험과, 수면 중의 꿈 등 비일상적 경험으로, 개인적으로 종교의 체험은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선 수행을 통하여 종교의 체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지구상의 어느 종교도 과학적인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신론에 있어서의 신의 존재는, 믿음으로서만이 인정이 가능한 것이지, 사실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한 입증이 되지 않아서, 가톨릭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믿지 않고서 유추해석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우주의 생성 과정과, 인류의 발전과정들을 역사적인 사실들과 경전과를 비교함으로서 교리에 대하여 과학적인 접근이 타 종교에 비하여 용이하고, 그 부분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유추해석이 가능하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에 의하여 타 종교에 비하여 비교적 과학적이라는 발언들이, 조교수님이 알고 있는 유럽 학자들의 발언들이었던 것이지, 불교가 과학 그 자체이거나 과학적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분명한 외도일 것입니다. 시야를 좀더 넓혀서 보시기 바랍니다.

3.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은 줄기세포 연구에서 서양 논리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며 동양 논리를 강조했다. 과학적 연구에 유용한 측면도 있는 것 아닌가.

=기독교와 달리 불교는 생명 개념 자체를 창조주에 의한 것으로 신성시하지 않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논의는 가능하다. 다만 논의를 하되, 불교적 입장뿐 아니라 다른 세속적 사항, 과학과 윤리, 인류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고려를 생략한 채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이 자기 입장을 먼저 개진한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돌아가신 전임 총무원장 법장 스님도 (줄기세포 연구 지지에) 적극적이었다. 그동안 불교학계의 논의를 보면 찬반이 나뉘었다. 하나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배아가 생명이냐 아니냐는 논외로 하고 이것이 가져다줄 요익중생, 즉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자비의 윤리가 더 크고 그게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뜻이라는 이유였다. 반대 논리는 비록 배아라 할지라도 생명으로 탄생할 수 있는 연장선에 있으므로 배아에 손대는 것은 ‘불살생’의 불교 윤리를 해친다는 것이었다. 불교학계에서 이 문제를 최초로 얘기한 2002년 <불교평론> 주최 생명윤리 세미나에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찬성한 것은 유일하게 나뿐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동국대 교수 등 나머지 분들은 전부 반대했다. 난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에 대해 종교가 잘못 재단했듯 종교적 가치와 과학적 사실의 문제는 다를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찬성했다. 당시 동국대 김종욱 교수 등은 불교에서 생명은 연장의 개념이고, 배아는 생명이 될 수 있는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손대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다. 난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후 더 깊이 연구해 2005년 춘계학술대회 때 반대자가 됐다. 그런데 2002년의 반대론자들은 이제 전부 찬성론으로 돌아섰다.

반론 
가. 총무원장이신 지관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의 근원은 표현이 서양논리 라고 말씀을 하시었다고 하더라도, 그 실제내용은 유신론에 구애받지 말자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말씀은 당연 하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유신론도, 무신론도 아니니까요. 조성택 교수님 의견하고는 전혀 다르지요? 의학을 보더라도 같은 질병에 대하여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치료 방법이 다르지요? 그것은 질병에 대하여 접근하는 근원적인 방법이 다르기 때문 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종교도 신의 존재유무에 따라서 교리가 매우 상이하며, 신앙의 방법 또한 매우 상이하답니다. 따라서 큰스님께서 서양논리라는 말씀을 하시었다 할지라는 그 내용은 유신론도 무신론도 아닌 불교의 교리를 말씀하시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주장한바와 같이 서양해부의학의 필요에 의하여 서양에서는 이미 줄기세포에 대한 교리가 가톨릭의 교리에 유리한 방향으로 성체세포라는 이름으로 정립이 되어 있습니다. 일찌기 가톨릭에서 줄기세포를 새로운 과학으로 받아들인 것은, 과거 역사적으로 범하였던 수많은 과오를 재연하고 싶지 안 았으며, 이에 대한 사죄의 방법으로 매우 적극적으로 대처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동양이 발원지인 불교에서는 종주국에서도 아직 교리 상 언급이 없습니다. 그것은 동양의학의 논리의 특이성 때문이었을 것이며, 새로운 과학의 출현 자체가 없었음으로 인하여, 과오를 범하는 등의 교훈적 사건들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 처음 출발한 줄기세포의 현실화에 대한 가시화에서 한국불교로서는 당연히 교리적인 정립을 하여야 하였다는 것이며, 불교신도인 황우석 교수님이 연구하심으로 불교 입장에서는 접근이 용이 하여서, 황우석 교수님이 연구를 계속하시기를 지원 하였으며, 또한 반드시 지원 하여야 하였으며, 그 정립을 한국불교가 먼저 하게 되어서 오히려 영광이라는 것이 저의 주장인 것입니다.

나. 불교는 생명개념자체를 창조주에 의한 것으로 신성시 하지 않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가 가능하다는 표현에 대하여서는 너무나도 심한 말장난이며,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창조주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왜? 그런 엉터리 말로 한국지식인들을 지적으로 혼란에 빠지게 하는지를 이해 할 수가 없군요! 또한 교수님께서 요익중생 이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였는데, 대승불교의 중생제도를 표현 하는 듯하기도 합니다만, 어느 종교나 교리의 용어는 그 종교교리의 정식용어를 사용하여 주는 것이 세계적으로 공통된 관례상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함부로 종교적인 교리상의단어를 조작하지 마십시요! 조계종을 비판하면서는 조계종 용어를 사용하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생만 되어도 불교는 파리까지도 생명이 있다하여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불교는 모든 생명체를 중생으로 여기므로, 그만큼 지계의 범위도 넓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만큼 생명을 중시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변화하는 과학에 대하여 불교의 근원지인 동양적인 가치관으로 줄기세포에 대한 교리의 정립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교수님이 가톨릭의 코페르니쿠스의 치죄를 언급 하였듯이, 가톨릭은 오랜 세월동안을 신학과 교회(혹은 철학과 종교)로 나뉘어서 연구를 하였으며, 그 결과를 100년 주기마다 개최되는 공의회라는 공식 기구를 통하여 자체검증을 하였던 가톨릭도, 지구는 돈다는 과학적인 새로운 이론을 제기한 코페르니쿠스를 단두대에서 목을 자르는 실수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불교는 새로운 과학의 출현에 대하여, 지금 그 정립을 시작하고 있는데,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불행으로 인한 불교의 수난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서는 촌스럽다, 미숙하다, 반사회적이다, 반민주적이다, 반민족적이다, 생명개념자체를 중요시 않는다는 등의 얼토당토아니한 불교 폄하발언 뿐만이 아니라,  생명개념자체를 창조주에 의한 것으로 신성시 하지 않는다며, 교리자체를 조작함으로 불교 신도들을 매우 심하게 모욕하면서 모든 불교 신자들을 정신 이상자로 만들고 있으며, 조계종단을 공격하면서 조계종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요익중생이라는 괴상한 용어를 사용함으로, 마치 불교를 많이 알고 있는 교수님 같은 발언으로, 많은 한국의 지성인들과 불교 신도들을 혼란으로 빠뜨렸으며, 한국불교를 의식적으로 매우 심하게 폄하하고, 신도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며, 모욕하는 목적이 무었인지 모르겠군요. 과연 블랙홀 이어서, 돌아오는 것이 없다고만 생각하십니까? 블랙홀이 사실이라면 한국불교가 지금 살아있다는 증거 일 것 입니다. 그러나 저는 교수님이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음으로, 저와의 토론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의 불교와 다른 종교의 교리비교, 각 종교가 교리를 정립 하는 방법, 각 종교의 종파, 각 종교의 제도, 각 종교의 운영 실태, 각 종교의 우리나라 사회에 대한 기여도에 대하여, 토론을 하여주실 것을 공개적으로 제의 합니다.

4. 전두환 보호와 황우석 보호의 차이
왜 그런 태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인가.

=난 법장 스님의 원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황우석이 불교인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랬을까. 정말 모르겠다. 그게 이상했다. 또 지금도 이해 안 되는 것은 불교계가 기독교와 달리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면 그 연구를 지원해야지, 왜 특정 연구자를 지원하냐는 것이다. 그건 황우석씨가 불교인이라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황씨 자신도 항상 염주를 두르고 다니지만, 불교계도 황씨가 불교인이라는 것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첨단과학에 종사하는 국민적 영웅인 황우석씨가 “나는 불교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불교인에게는 상당한 자긍심을 주었다. 그게 (황우석 지지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거기에 법장 스님, 지관 스님 등 조계종 총무원장이 앞장선 것인데, 문제 있는 태도다. 가톨릭 주교나 추기경이 거느린 스태프의 전문성은 대단하다. 반면 조계종 총무원장이 갖는 전문성은 대단히 미약하다. 교육 과정에서 차이가 나고 신부들은 재가자(속세에 머문 교인)와 연대가 밀접한 데 반해, 조계종은 재가자의 개입을 제한하고 자기들끼리 한다. 불교계가 사회 현안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고 역사적 노하우도 적다 보니 대응이 미숙하고, 이번 (황우석 교수 파문) 같은 현안에 대한 발언도 상당히 촌스럽다. 불교계가 최근 세사에서 일반 정서와 달리 행동한 게 백담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받아들인 것인데, 이번 경우도 흡사하다. 그런데 전두환 보호는 사실 종교의 역할이다. 정치적 고려를 한다면 전두환을 받아들이면 안 되지만 정치 논리를 넘어 용서와 화해라는 종교 논리가 있었다는 점에서 황우석 감싸기보다는 더 나은 사건이었다.

반론
가. 황우석 교수님이 불교신도가 아니셨다면 정말로 그랬을까? 라는 의심은 너무나도 비종교적이고, 소아병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불교교리의 정립과정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여보기 바랍니다. 서양종교 동양종교로 생각하지 말고, 유신론과 무신론과 유신론도 무신론도 아닌 종교로 분류하여 생각하여 본다면, 지관 총무원장 큰스님의 말씀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는 황우석 교수님 개인으로 인하여 교리를 정립할 수 있는 변화의 시기를 확인한 것이며, 다행이 황우석 교수님이 불교신도 이어서 불교 측에서는 접근하기가 용이 하였을 뿐입니다. 이 부분은 가톨릭 등 세계사적으로도 그러하여 왔으며, 아무도 그런 사실을 탓할 수가 없음은, 한국의 가톨릭도 자체적으로 유리한 방법으로 하고 있으니까 누가 연구를 하느냐는 사실만을 가지고는 시비까지는 하지 못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사실을 조성택 교수님은 오해한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황우석 교수님이 불교의 교리를 확립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연구 하시어서, 2002년 월드컵이후로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눈에 보이게 업그레이드되었듯이, 다시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상승 시킬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부를 쌓아 우리의 자손들이 "확실한 양질의 삶"을 누릴수 있게 되기를 기원 합니다.

나. 저도 염주를 두르고 다니지만, 제가 사용하고 있는 염주는 세 가지 입니다. 목에 두르는 염주와, 손에 들고 다니는 염주, 손목에 차고 다니는 염주인데, 영등포구신길7동 영길교회 라는 교회인근에 살고 있는데, 하루는 제가 없는 동안에 방에까지 무단 침입한 누군가가, 두고나간 손 염주는 줄을 끊어 버리고, 손목염주는 알을 깨어 버리는 일까지 당 하였으며, 경찰에 다른 여러 가지 사실들과 함께 이 사실을 신고 하였으나, 아직 아무런 응답이 없을 정도 입니다. 염주를 두르고 다니는 것은 불교학 교수인 조교수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슨 죄가 아닙니다. 누구 보기 좋으라고 차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저는 다만 다른 사람은 평생에 한번당할까 말까 하는 불행을 열손가락으로 꼽아도 부족할 정도로 많이 겪은 가슴속 깊은 상처 때문에 불교로 개종까지 하여서, 스스로의 신앙을 항상 확인하고, 예배함으로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함인데, 저의 주변에는 조성택 교수님처럼 그런 사실을 되 세기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러나 그런 부류의 대부분은 지성이 덜 갖춘 천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다. 가톨릭주교님이나 추기경님은 임기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장기간 같은 직책(추기경님과 주교님들을 감히 비교하는 것은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에 임하시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불교에서의 그 임기는 종교적 측면에서 볼 때는 조금 짧은 듯 합니다. 거기에 김수환 추기경님은 완벽한 성직자이시니 유별나게 많은 지식인들의 조언을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한국불교의 웃어른이신 법전 종정성하와 지관 총무원장 큰스님의 재가신도와의 연대가 제한되었다고 하시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또한 자기들끼리 한다는 말도 지나친 관여이고, 모욕입니다. 행여 일류대학에 재직 중이신 조성택 교수님을 빼고 하니까 그런 말씀을 하는 것은 아니지 생각하여보기 바랍니다. 블랙홀이 사실이라면 한국 불교가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커다란 태풍일수록 그 중심은 항상 더 고요하고 더 적막한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하여 보지 않아서 모르는군요!
조성택 교수님은 재가자라는 발언만 하였지 재가신도라는 발언은 한번도하지 안하였습니다. 아무리 깨달은 분이라 하실지라도 대한민국 국민모두를 껴 안으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커다란 태풍이 자나가는 사실조차 모르는 태풍의 핵심에 들어있는 사람인, 블랙홀에 들어있는 사람은 더더구나 더 그러하리라 봅니다. 또한 저로서는 지금과 같은 추세로 10년만 더 노력하여간다면, 한국불교도 상당한 발전을 이루리라 봅니다. 다른 종교에 대하여도 많은 관찰을 하여보기 바랍니다. 가톨릭이 철학과 종교(혹은 신학과 교회)로 분류되어 그 맥을 이어왔듯이 불교도 나름대로 각 나라마다 특징을 가지고 그 맥을 이어 왔음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라. 조교수님 같이 아만으로 꽉 찬 사람이, 불교계가 어떤 전문성이부족하고, 어떤 역사적인 노하우가 적고, 어떤 대응이 미숙하고, 황우석 교수님의 일에 대하여 어떤 촌스런 발언이 있었는지, 분명한 말씀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반드시 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막연하게 그런 말씀을 하시니 이해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마. 같은 불교신자 이시지만, 황우석 교수님이 하시는 줄기세포 관련은 불교 종주국에서 보다도, 대한민국 에서 처음으로 하는 새로운 과학의 출현에 의한 시대의 변화에 대한 불교 교리의 정립 절차이고, 전두환 전임 대통령님의 백담사 거주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용서와 화해라는 당시의 국민정서와 통치자의 뜻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며, 무었 보다도 중요한 것은 2002월드컵을 유치하신 대한민국의 대통령까지 지내신분 임으로 국가의 성장도 등을 고려하고, 큰 의미의 국가관으로, 불교 신자이신 전임 대통령에 대하여, 불교에서 그 정도의 예우는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불교계의 판단과 국민정서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황우석 교수님의 경우는 다릅니다. 한 개인이 성공하기 위하여서는 비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비젼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국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2002년 월드컵 당시 목이 쉬어라고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였으며, 그 꿈이 이루어져서 우리는 월드컵사상 처음으로 4강이라는 기적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며,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가 급상승함으로 우리국민들의 자존심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음을 우리국민 모두는 확인하고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황우석 교수님의 연구내용은 확실하게 우리국민들에게 꿈을 안겨 주었습니다. 또한 그 가능성도 확인을 하였습니다.

지금 그 꿈은 조성택 교수님의 말씀처럼 무분별하다는 과학자 황우석 교수님을 감싸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은 앞서가는 실수를 범하기는 하였습니다만, 조성택 교수님 같은 자들이 황우석 교수님을 범죄인처럼 만든 이후로도, 외국 언론에서는 특허가 가능 할 수도 있다는 보도를 하였으며, 한국은 자살골을 넣었다는 보도까지 하였습니다. 따라서 저의생각으로는 그 가능성이 있는 특허도 받아내서 국민들에게 실익이 있게 하자는 것이며, 그 연구를 불교신도이신 황우석 교수님이 계속 하시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과학의 출현에 대한 불교교리의 재정립이라는 대한민국불교의 변화하는 모습이라고 저는 다시 한번 주장을 합니다. 따라서 줄기세포 연구는 불교입장에서는 불교신도이신 황우석 교수님이 계속 하시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는 있어도, 정치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전두환 전임 대통령님의 문제와는 다르다는 것이 본질인 것입니다.

5. 전두환을 받아들인 것보다 황우석을 두둔하고 감싸는 게 훨씬 나쁜 행동이라는 것인가.

=그렇다. 황우석은 사실의 문제였다. 모든 사실이 종결된 다음에 과학자가 아니라 인간 황우석을 불교계가 받아들이고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모르겠는데, 과학이라는 사실의 문제, 이미 조작이라고 명백히 밝혀졌는데도 자꾸 감싸는 것은 문제가 있다. 좋게 보면 우직하고 의리파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불교계가 그렇게 무분별하게 과학자 황우석을 감싸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 그건 아니다.

반론
가. 조성택 교수님 답답합니다.
어느 누구 이던지 간에 고려대학교 학생들에게 물어 보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님과 황우석 교수님은 비교할 수가 없으며, 비교 하여서도 안 된다고 말 할 것입니다. 과학적인 사실을 정치적인 사실과 비교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며, 촌스러운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직하고 의리문제로 종교를 바라보신다니 참으로 답답하군요. 너무나도 소아병적인 종교관 이십니다. 종교는 어떤 판단에 있어서 시간이 필요함으로 우직하다는 표현은 할 수가 있을지 모르나, 의리문제로는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나도 우직한 표현 입니다. 황우석 교수님 본인은 조작이라는 말씀을 한번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줄기세포 재연으로 사실을 입증하고 싶다고 하시었습니다. 불교교리의 중요한 변화의 길목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꿈의 실현을 안겨 줄 수도 있는 길목에서, 후손들에게 번영을 안겨줄 수도 있는 희망적인 현실에 대하여, 불교는 당연히 주장을 하여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조성택 교수님과 같이 무조건 반대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양식이 있는 애국국민이나, 종교단체, 회사, 특히나 불교에서는 황우석 교수님을 지원하여서 연구를 계속 하시게 하는 일이 새로운 과학의 출현에 대한 불교교리정립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정부로서도 국가 브랜드가 업그레이드되고, 후손들에게 번영을 보장 할 수 있는, 엄청난 부가이익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과감하게 추진을 하여야 할 것이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못하고 있으니, 불교에서 당연히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노력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앞서 말하였고, 뒤에서 말 하는 것과 같이, 어떻게 이런 큰일을 우직하고 의리파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일 인양 표현함으로, 불교를 폄하 할 수가 있습니까? 너무하십니다. 그 정도의 이론은 중학교 3학년도 표현 할 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서 저의 학창시절에는 대학에서 영어 표현을 모두 할 수 있으면 잘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이면 영어로 모든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 한의사를 하고 있는 제 딸은 중학교 3학년 때 English Speaking을 master하였습니다. 우주의 변화와, 시대의 변화에 거스르지 마시고, 순응하시기 바랍니다.

나. 당시로서는 통치자의 생각과 국민정서와 선진국으로 향하는 안정된 대한민국이라는 대의적인 국가의 명예를 위하여 전두환 전임 대통령님을 받아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실은 이미 현실적으로 검증을 받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님은 현재 진행 중이며,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였으며, 조금 앞서가는 실수는 하였으나, 외국 언론에서는 자살골을 넣었다, 특허는 가능 할 수도 있다는 등의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조교수님 개인의 일 같으면 지금 그런 연구를 포기 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용이라는 것은 투자에 불과 합니다. 충분한 이익이 보장되는 일에 대하여, 그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여서,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하여서 포기하는 것은 졸장부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인간은 죽을 때 까지 꿈을 가지고 있어야하며, 죽는 순간까지도 그 꿈이 이루어질 것 이다. 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불교교리인 윤회에서 다시 인간으로 환생이 가능하리라고 확신 합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비젼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6. 그럼에도 지관 스님이 황우석을 옹호하는 태도를 바꿨다는 기미는 없다. 혹시 불교계 전반이 황우석 옹호에 공감한 것 아닌가.

=불교계의 말없는 다수는 오히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찬반이 쪼개진 상황에서 이미 돌팔매 맞고 있는 사람에게 돌 하나 더 던질 수 없어 침묵할 뿐이다.

반론
교수님의 말이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하겠습니다만, 저의 좁은 소견으로서는 말없는 다수의 의견은 황우석 교수님의 연구결과가 성공하기를 바랄 것이며, 외국 언론의 보도로는 특허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하니, 특허를 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하여주고, 줄기세포 재연까지는, 국가에서 지원하여 주어야 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우세함을 어느 개인택시 기사님이 자기가 알아본 여론조사 결과라며 저에게 귀뜸 하여 준바가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지와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이 업그레이드되는 기회가 상실되고,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상당수준 상승 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함으로서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다수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조교수님이 말하는 불교계의 말없는 다수중의 몇 분 스님들의 명단이 이미 언론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분들로 인하여 불교계의 다수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큰 오산임을 알기 바랍니다. 한국역사의 불행으로 인하여 불교계는 오랜 세월동안 그 할일을 다하지 못 한 사실들을 그분들은 망각한 것이며, 그 기간동안에 불교계가 받았던 큰 상처를 조교수님이 지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계는 하여야할 일이 다른 종교에 비하여 너무나도 많습니다. 조교수님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너무나도 안하무인격 입니다. 우리 서로 별로 아는 것도 없는 사람들끼리, 물론 꺠달음에 대하여는 제가 조금은 앞선듯합니다만, 토론 시에는 저처럼 조금은 점잔을 떨면서 공격을 하도록 하지요?

7. 불교계에서는 황 교수에게 원천기술의 재현 기회를 주자며 100억원 모금 운동까지 일고 있는데.

=말이 안 된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종교도 하나의 단체고 하나의 구성원일 뿐이다. 우리 사회는 공익적 연구에 민간기업의 돈이 투여되는 것을 우려한다. 100억원의 모금 주장은 황우석과 친한 특정 단체나 기업에서 황우석에게 100억원을 주겠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또 황우석의 연구 결과가 정말로 요익중생을 실현할 정도인가. 갈 길이 엄청나게 먼데, 100억원으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100억원 지원설은 그간의 지원을 볼 때 불교계의 스타 만들기 차원이지 진정으로 국익이나 요익중생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관 스님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서양 윤리라고 무조건 황우석 연구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성체 줄기세포 연구 지원이라는 나름의 대안도 내놓았고, 개신교의 어른인 강원룡 목사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도 가능하다는 신학적 입장을 제기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배아가 생명이라고 해서 당장 연구 성과가 나오는 이것을 금지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불교계도 그렇게 다른 논리가 나올 수 있다. 우린 기독교와 다르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에 찬성할 수 있다는 것은 교리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공격받는 황우석 교수를 엄호사격하며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지난해 12월10일 병원에 입원한 황 교수를 방문한 지관 스님. (사진/ 연합)


반론
가. 불교계에서 황우석 교수님에게 원천기술 재연의 기회를 주자며 100억원의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저는 조성택 교수님과 정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도, 한 개인도 비젼이 있어야하며, 그 비젼의 실천 가능성을 믿어야 하는 것처럼, 불교도 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주장입니다. 다른 종교의 유신론이 신의존재 자체의 입증이 불가능한 부분에 대하여, 불교교리에 대하여는 유추해석을 할수 있다는 사실의 입증이라는, 커다란 불교 교리적인 의미와, 국민들에게 자존심을 키워줄 수 있는 가능성과, 국민들의 다수에게 대량의 지속적인 경제적 이익을 키워 줄수 있는 길이 있다면, 다소 출혈이 되더라도 미래의 후손들의 번영을 위하여 국가 기관이던지, 종교단체이던지, 회사이던지, 개인 이던지 간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그 꿈이 실현 되도록 투자하고, 모든 노력을 다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더 더구나 불교의 입장에서는 그 노력이 바로 교리를 정립하는 것이며, 교수님이 말하는 요익중생을 위함이며, 대승불교에서 요구하는 중생제도를 의미하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더 큰 차원의 국익을 위한 일이며, 가장 올바른 판단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함에도 우리사회는 공익적 연구에 민간 기업의 돈이 들어가는 것을 우려 한다고 말한 사실은 대학교수의 발언으로서는 너무나도 소아병적인 황당한 착상이라고 주장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두 번이나 하여서 대단한 성공을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세계 모든 나라들로부터 엄청난 부러움을 산 사실이 있다는 것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지난 금 모으기 운동에 조성택 교수님은 참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황당한 착상이 나 올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와 같이 유추해석이 가능한 불교교리이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불교를 과학과 가깝다고들 말하는 것입니다.

나. 100억원은 작은 금액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톨릭 에서는 이미 그 모금의 실행에 들어갔다는 보도에 접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과학의 출현이라고 여기는 줄기세포를 성체세포라는 가톨릭 교리에 유리한 방향으로의 실현이라는 커다란 목표가 있다고 봅니다. 조교수님이 가톨릭은 유용성을 살리려고 지원하였다고 매우협소한 길을 말 하였지만, 그길 또한 엄청나게 멀고도 멀기만 합니다. 불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2,500여년 동안을 변화에 적응하여 왔는데, 단 몇 년의 변화에는 당연히 적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불교가 교리정립을 위하여 지원하는 사실에 대하여서는, 조교수님은 불교계의 스타 만들기 차원이다, 진정으로 국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요익중생(요익중생이라는 단어가 어데서 나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승불교의 중생제도라는 말로 해석하였음=교리의 중추단어는 공식외의 다른 표현으로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은 세계적으로 어느 종교에서나 공통된 관례임을 참고 하기 바랍니다)차원이 아니다, 라는 등으로 말로서 불교를 폄하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황당하여 글로서 표현하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일은 스타 만들기가 아니라, 불교에서 반드시 성취하여야할 인류변화에 적응하는 새로운 과학의 출현에 대한 불교교리 정립의 과제이며, 유신론과 서양 해부의학을 의학적 기반으로 하는 가톨릭에서는 이미 이에 대한 교리가 성체줄기세포로 정립이 되었다는 사실이며, 이러한 범불교적인 교리정립이라는 큰일을 대한민국에서 정립할 수 있게 되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여 주시었으면 좋겠습니다.

다. 조성택 교수님은 개신교의 어른인 강원룡 목사님께서는 배아줄기 세포연구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교수님은 가톨릭과 개신교와 불교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고 있습니다. 개신교가 어떤 종교 입니까? 교수님의 주장의 교리대로 해석을 한다면, 가톨릭의 입장에서 볼 때는 개신교 교리가 촌스럽고, 설득력이 없고, 이단 집단으로 여기려고 할 것입니다(현실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개신교의 교리와 가톨릭의 교리는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분명한 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예로서 가톨릭 에서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신학과 교회(또는 철학과 종교)로 분류되어 많은 연구를 하여 왔으며, 그 결과를100년 주기로 개최되는 공의회라는 공식 기구를 통하여 전례화 하였기 때문에, 교리를 자체검증과정을 거쳤다고 말 할 수 있으며, 그런 연유로 인하여 조교수님이 말하는 서양의학에서 연구한 성체줄기세포와 배아 줄기세포의 구분에 대하여 자체적으로 성체줄기세포로 교리상의 정립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함으로 아무도 그 이론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 하지 않는 것은 가톨릭의 자체 검증이라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라. 그러나 불교와 개신교의 입장은 다릅니다.
개신교는 역사도 일천할 뿐만이 아니라, 교리를 연구하는 기관이 있는지도 저는 잘 모르겠지만, 교리자체가 한 시대의 사류에 의한 필연성이라는 명분 하에 상당한 자체 연구기간과, 자체 검증과정 없이 조교수님이 말하는, 그야말로 불노소득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개신교 교리인 것이며, 특히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의 개신교보다도 그 종파가 많이 있으며, 이는 개신교 자체의 내부문제 일뿐임에도, 종파 상호간의 분쟁으로 인하여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현실로서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사회지도계층에 속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군대에 안 간다는 이유로 교도소 공부를 먼저 시킴으로서, 우리나라 사회기반의 분위기를 열악한 방향으로 악순환 되도록 유도 하고 있으며, 종파 상호간, 국민과 국민 간, 그리고 국가기관 간에 분란을 일으켜서 건강한 사회보다는 혼돈과 혼란스런 사회로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타 종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개신교 내부의 문제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개신교 교리내부에 심각한 많은 문제와 갈등이 내제하고 있기 때문 이라고 생각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교리적인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전례상의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너무나도 배타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자만심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음에도,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 신자들과는 달리, 타종교 신도들을 배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타종교 신도들이 개신교 신자들을 측은하게 까지 바라볼 정도입니다. 대한민국의 개신교는 분명히 다릅니다. 줄기세포연구 등 새로운 과학의 출현에 대하여도 개신교는 아직 아무런 이론적인 정립의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개신교를 끌어 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가만히 있는 개신교를 이단으로 만들려고 하십니까?

마. 그러나 불교의 입장은 가톨릭과 개신교와는 교리적 측면에서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유신론도 무신론도 아닌 불교교리는 이조 500년의 억불시대와 일제 36년의 강점기라는 불교자체의 내부문제가 아닌 타의에 의한 수난기를 겪었으며, 해방 이후로는, 혹자는 재산 싸움을 하였다고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법 란" 이라는 어려운 역사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교세의 확장이나, 교리의 검증 보다는, 생존자체에 많은 중심을 두고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작금에 와서는 매우 다른 환경에 처해 있으며, 수많은 학승들이 이러한 역사적인 과오를 부끄러워하고 있으며, 그 스님들은 자기들의 저서를 통하여 그러한 부끄러운 사실들을 사과 하였으며, 이의 시정을 위하여 보조국사와 뜻을 같이 하였던 스님들이 결성하였던 정혜결사와 비슷한 단체인 "신 정혜결사" 라는 조직을 결성하는 등의 부단한 노력을 한 결과로, 조계종단에서도 교리적인 자체검증을 위한 노력을 중요시하게 되었으며, 각 종단은 종단 나름대로 다방면의 통합노력을 기울이고 선교를 위하여 노력한 결과로, 저와 같이 교리로 무장하고 싶어 하는 새로운 불교신도 세력들이 불교를 빠르게 알 수 있게 되어, 한국불교의 새로운 신도세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미래에는 더 많은 변화가 자체 연구결과로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관 총무원장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런 차원에서 받아 드리고 있으며, 이는 불교가 스스로 정화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며,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는 노력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리라 봅니다.

8. 지율의 위험한 독선주의와 폭력
불교계에서는 그런 비판적 의견이 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말없는 다수가 있다. 지관 스님이 얘기한 것에 대해 동국대 교수 등 불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감히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현안 분석과 전문가적 안목이 필요한데, 그런 싱크탱크도 없이 그냥 총무원장의 개성이 드러나는 발언을 막 하는 것은 미숙한 행동이다. 불교도 세속 문제에 전문가적 안목을 갖춰야 한다. 전문성 없이 자꾸 불교적 논리만 갖다대니 항상 각론에서 논리가 달리고 밀리는 것이다.

반론 
정치도 아닌 종교적 가치관에서 싱크 탱크의 중요성이 과연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판단으로는 종교에서의 진실성, 진리성은 그 비중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돌팔매 맞고 있는 사람에게 돌 하나  더 던지지 못하여 침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아니하고, 조교수님과 같이 불교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단자랄지, 혹은 목소리만 큰사람 이라고 표현 될 수도 있는 사람에게만, 언론에서 발언권을 주기 때문에 그렇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산반야회 관계자들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었다면, 최소한 조교수님 정도의 무자비한 자만의 발언은 하지 않았을 것이며, 새로운 과학의 출현에 대한 불교교리의 진리성에 대한 입증을 하기위하여 노력하는 자세로, 줄기세포는 반드시 황우석 교수님에 의하여 재연 되어야 하고, 그와 함께 연구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개성이 들어나는 막하는 말씀이 아닌, 성직자 본연의 위치에서 정직하게 진실을 진실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드리자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불교 교리정립을 주장 하신 것이었으며, 이의 재연으로 검증을 하자는 주장을 하신 것입니다. 이는 성직자로서 당연히 주장 할 수 있으며, 또한 의무이기도 하다는 저의 주장입니다. 교리에 대하여만은 최소한 지관 총무원장 큰스님께서 조성택 불교학과 교수님보다는 깊이가 더 있으시리라고 저는 교수님의 글을 통하여 확신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며, 고려대학교 사이트를 통한 토론을 다시 한번 제의 합니다.

9. 어떻게 현안에 대한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가.

=출가자와 재가자가 좀더 긴밀한 연관을 가져야 한다. 출가자만의 집단, 출가자 우위는 곤란하다. 깨달음만 추구하는 조계종 중심의 출가자 집단이 아니라 일반 불교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근대화 과정에서 기독교는 정치·교육·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부작용을 일으켰지만 긍정적인 역할도 했다. 하지만 불교계에서 한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거의 무임 승차해왔다. 만해 한용운의 경우도 조계종단에서는 결코 띄우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결혼도 했고, 대처를 주장했다. 하지만 근대 정치·사상·문학에서 드문 스타고 그를 통해 불교가 가지는 사회적 이미지도 좋아지기 때문에 못 놓는 것이다. 그런 연장선에서 자꾸 황우석씨를 붙잡아두려는 것 같다.

반론
가. 가톨릭에서는 신부님과 수사님이라는 칭호로 구분되는 성직자가 있습니다. 두 분야 모두가 성직자이긴 합니다만, 신학과 교회(혹은 철학과 종교)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공부하며 경험하고 있습니다. 불교에도 출가하는 방향이 서로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불교의 전파 경로에 따라 나라마다 그 표현방법이 다르기는 하지만, 불교에도 그런 구분이 존재 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구분이 조금은 애매하긴 하지만, 존재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소위 말하는 학승이라는 칭호가 그래서 생겨난 것이며, 그런 스님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저는 스스로를 다시 발견함으로, 불교로의 개종에 속도를 가하였던 사실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재가신도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제가 불교 안에서 무었을 하여야 할 것이며,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함에도 지금까지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하는 교수님께서는 욕심이 너무나 많던지, 아니면 대승적 불교 교리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깨달음은 조계종 중심의 출가자뿐만이 아니라, 신, 해, 오, 수, 증, 화의 과정에서 모든 중생이 추구하여야할 근본과정인 것입니다. 또한 일반 신도들의 역할은 각 사찰별로 신도회가 있고, 중앙 불교신도회가 있습니다. 두 단체 중 한 단체만 열심히 나다니면, 얼마든지 인터넷이나 모임 시에 발언할 기회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저도 인터넷 단체의 모임에 참석하여서 발언을 한 사실이 있습니다. 저 또한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며, 현직시에는 어느 분야에 대하여서는 대한민국최고의 기술수준에 있다고 자부를  하였던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불교신도이시라면,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불교를 막가게 폄하 하시면 새로운 불교신도세력들의 엄청난 반격을 받을 것이며, 저도 지금처럼 점잔한 말로만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정중하게 충고 합니다. 아울러 앞으로 우리조계종에 대한 무지한 언급은 삼가 하여 주시기 바라며, 불교종파간의 이간질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나. 출가자만의 집단과 출가자 우위는 곤란하다?
무슨 뜻인지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가톨릭에서는 출가자만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원 혹은 수녀원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출가자만의 집단인 것입니다. 그들의 가톨릭 안에서의 역할이 매우 크며, 세계역사에 공헌공로가 매우 크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불교에서도 가능하다면 별도의 출가자만의집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다른 종교에 있을 때 저는 불교신도들은 무식하고, 미신만을 숭배하는 집단쯤으로 여겼습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고 불교를 공부하다보니, 그 심오한 진리가 아무리 공부하여도 가슴에 꽉 차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저는 기본적인 서적에 매달렸으며, 그러는 가운데 불교 경전을 근본적으로 받아 드릴 수 있는 정신적인 배경이 형성 되었으며, 삼귀의라는 말도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전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례는 법회입니다. 그 법회시마다 우리는 삼귀의라는 기도문을 독송합니다. 한문으로 표현하면 귀의불양족존, 귀의법이욕존, 귀의승중욕존 이며, 우리말로하면 거룩한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들께 귀의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 교리에 의하여 법회 시에는 스님들이 사자좌에 앉아서 법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뒷사람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높은 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불교의 핵심교리이며, 방법은 다르지만 이런 전례는 어느 종교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성택 교수님은 출가자 우위는 곤란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부처님이래로 맥을 이어온 전통을 거부하는 이단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며, 이런 자는 불교계안에서는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다. 근대화 과정에서 기독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불교는 무임승차 해 왔다는 말에 대하여는 불교계가 해방 후의 시대적 과오를 범하였음을 이미 많은 훌륭하신 스님들이 인정하였으며, 그 결과로서 지금처럼 변화를 수용함으로서 커다란 획을 그었으나, 교수님처럼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 신도들도 있으리라 봅니다. 불교신도들을 변화에 적응하는 새로운 신도와 구태의연함을 주장하는 구 신도로 분류 할 수 있다면, 교수님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신도 그룹에 속하거나, 출가자 우위를 부정하는 이단자라는 것이지요. 교수님이 만약 불교 신도 라면, 이부분이 교수님의 훌륭한 지식을 오류로 이끄는 가장 큰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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