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총림(叢林) 쌍계사

역대조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총림(叢林) 쌍계사

벽송 지엄 (1464∼1534) 碧松智嚴


스님의 법명은 지엄, 법호는 야로, 당호는 벽송이다.
속성은 씨, 아버지는 복생, 어머니는 왕씨이다.


어느날 어머니 꿈에 한 인도스님이 예를 올리고 자고 간뒤 잉태 1464년 3월 15일 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특이한 골격과 기상이 웅혼하였고, 글공부와 칼쓰기를 좋아하고 병서(兵書)에 능했다.


1491년 여진족이 쳐들어오자 도원수 허종과 함께 이차마와 싸워 큰 공을 세웠으나 세상의 속절없음을 느껴 출가의 뜻을 굳힌다. '그는 대장부로 태어나 心地를 지키지 않고 헛된 명예를 쫒아 외부로만 치닫겠는가'하고 계룡산 상초암에서 조징(祖澄)대사에게로 출가한다. 교학에 밝은 연희 스님을 찾아가 '원돈교의'를 묻고 벽계정심 선사를 찾아가 '달마가 서쪽으로 온 뜻'을 일깨움을 받았다.
1520년 지리산으로 들어가 초암에 머물며 옷을 갈아 입지 않고 하루 두 번 먹지 않고 정진을 거듭했다. 문을 닫고 외부와 교류를 일체 두절하여 거만하다는 비방을 많이 받았다. '장자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마음을 알겠는가' 하고 하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벽송당부도


一이 하나(是一)이란 것은 眞이다, 妄이다 하는 분별을 떠나 이름과 형태와는 상관없이 굳세고 산뜻하고 걸림이 없는 것이다. 만약 '삼라만상이 다 여래의 실상이고, '견문각지'가 모두 반야의 신령스런 광명이라면 외도의 견해라 어찌 한 맛의 선정 (一味禪)이 생길수 있겠는가' 1534년 겨울, 여러 제자들을 화개 수국암에 모아 [법화경]을 강설하다가 방편품에 이르러 '이 노승은 여러분을 위해 적멸상(寂滅相)을 보이고 가리니 여러분은 밖으로 향해 찾지 말고 더욱 힘쓰라'고 당부하고 열반에 드셨다. 11월 초하루 진시였다. 입적한 뒤에도 얼굴빛이 변함이 없고 팔다리는 마치 산사람처럼 부드러웠다. 부도탑을 본래 지리산 화개 의신사 남쪽 기슭에 봉안하였다. 이 절이 폐사된 후에 1798년 3월에 쌍계사 서쪽 옥천 기슭에 이안하였다.
대사는 태고보우로부터 벽계정심-벽송지엄-부용영관-서산휴정으로 이어지는 해동 임제종의 정맥을 이은 분이며,현 조계종의 법통을 전해준 분이다.1508년 가을에 금강산으로 들어가 {대혜어록}과 {고봉어록}을 연구했고 평생동안 그 선풍을 진작하였다. 또 초학자들을 지도할 때에는 먼저 {선원집}(선원제전집도서)과 {별행록}(법집별행록병입사기)으로 여실지견(如實知見)을 세우게 한 후에, {선요}(禪要)와 {어록}으로 지해(知解)의 병을 제거하고 활로를 열어주었다고 한다.
대사로 대표되는 조선조 재야선문은, 종단의 유지보존과 관련된 심각한 위기의식 속에서, 그 과정에서 고려중기 수선사의 엄격한 수행정신과 철저한 출세간주의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러한 수선사의 선풍을 진작하는데 핵심적인 이론이 돈오점수와 간화선에 있었음을 알고, 지눌과 대혜 그리고 종밀의 선사상을 조합하여 강원의 교육과정으로 삼았던 것이다.조선조와 현 조계종 전통강원의 뼈대를 세우신 분이 대사이시다. 대사의 법손인 휴정서산대사의 찬술이 있다.
조선 피부에 인도의 뼈
중국의 달 동이의 바람이여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머리털이 나는 듯 하네
어두운 거리의 한 촛불이여 진리의 바다에 한조각 배였어라.
아~아 스님의 위대한 모습, 천년만년 사라지지 않으리.

- 명종 15년 (1560) 여름 두류산 법손 휴정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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