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총림(叢林) 쌍계사

역대조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총림(叢林) 쌍계사

백암대사 栢庵大師


대사는 1631년(인조 9) 11월 15일 申時에 현 전북 남원군에서 탄생하셨다.


법명은 性聰, 법호는 栢庵이며 성은 이씨이다. 아버지는 棡이요, 어머니는 河氏이다.
1643년(인조 21)인 13살 때 전북 순창의 鷲巖寺로 나아가 머리를 깍고, 16살 때 구족계를 받았으며, 1648년(인조 26)에지리산 翠微대사계 나아가 9년 동안 수업하여 가르침을 다 이어받았다.
1657년(효종 8)에 곡성군 道林寺 禪德庵에 주석하면서 1660년(현종 원년)에 비로소 開講하여, 이때부터 여러 산을 두루 다니며 배우는 이들을 이끌었다. 1673년(현종 13)부터 영광군 海佛庵에 있다가 1676년(숙종 2)에는 송광사 隱寂庵으로 옮겼다. 이듬해에 승주군 주암면에 있는 大光寺에 머물었으며, 다음해에 송광사 보조국사비와 사적비를 건립하였다.
1681년(숙종 7), 중국의 상선이 폭풍을 만나 정처없이 표류하다가 서해 무안군의 荏子島로 밀려왔는데, 가득 실린 法寶가 모두 해수에 침습되어 유실되고 파책을 이룬 것이 많았다. 그 태반은 선사들의 손을 거쳐 조정으로 옮겨졌고, 나머지는 몇으로 나누어 연해의 여러 사찰에서 왕왕히 얻어갔다.
대사는 다음해 여름 佛岬寺에 갔다가 이 소식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해 來蘇寺(楞伽山) · 烟起寺(逍遙山) · 禪雲寺(兜率山) 등과 연해의 여러 산을 왕래하면서 경전을 수집하였다. 그러나 산질된 것이 많아 그 후 9년 동안 궐본을 보완하였다.
그 결과 명나라 平林居士의 교간본인 『華嚴經疎鈔』와『大明法數』·『會玄記』·『金剛記』·『起信疏』·『淨土寶書』등 400여 권을 얻었다.
1685년(숙종 11)부터 완질된 법보만을 낙안군 澄光寺(지금은 폐사됨)로 보내 간행을 시작하여 다음 해 봄에 먼저『금강기』를 간행하고, 다음으로『四經持驗』, 그 다음에『私集』을 간행하였다. 또 다음 해에는 『화엄소초』와『대명법수』를 간행하였다. 대사는 1689년(숙종 15) 봄에 징광사로 돌아와 모든 역사를 독려하고 華嚴 · 靈山의 두 탱화를 완성시켰으며, 다음해 5월 5일에 落成千燈佛事를 행하였다.
이에 이들 법보가 비로소 여러 사찰에 전파되자, 제방의 불자들이 따라 우러르며 ‘大宗師’라는 경칭을 바쳤다.
다음해(61세)에는 선암사의 滄波閣에서 화엄대회를 베푸셨는데, 이는 『화엄소초』를 맞아들인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1695년(숙종 21)에는 쌍계사(경남 하동군)로 나아가 성능상인에게『회현기』40권과『筆削記』4권을 간행 · 유포하도록 명하였고, 다음해에는 능가사(전남 고흥군)로 나아가 팔상전을 창건하고 또 석가 · 미타 2 · 3 相을 조성하도록 명하였다.
1700년(숙종 26) 7월 25일 쌍계사 新興庵에서 입적하시니 나이 70세요, 법랍 55년이셨다. 다비하는 날 저녁에 精骨 2매를 얻어 송광사와 칠불암에 탑을 세웠다.
대사는 내외전에 널리 통달하여『자주치문』3권 외에도 私集 2권, 諸經序 9수, 淨土讚 백수를 간행하여 세상에 유포하였다.
방외에서 사귄 이들로는 당시의 이름있는 사대부인 金文谷 · 鄭東溟 · 南壺谷 · 吳西坡 등 여러 公들이 있다.
입적 후 66년인 66년인 1766년(영조 42) 여름에 玄法孫인 黙庵 · 霽雲 두 노사가 대사의 아름다운 자취를 영원히 전하기 위하여 송광사의 부도전 北元에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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