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시문

두류산 신흥사 능파각기[頭流山 新興寺 凌波閣記] -서산대사

최고관리자
2010-07-2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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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산 신흥사 능파각기[頭流山 新興寺 凌波閣記]  -서산대사


세상에서 말하기를, ‘바다가운데 세 산이 있으니, 두류산은 그 중의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지리산은 우리 東國의 호남과 영남의 사이에 있다. 그 산에 한 절이 있으니 이름
이 신흥사요, 절이 있는 골짜기는 花開洞이다. 골짜기는 매우 좁아서 마치 사람이 병 속
을 드나드는 것 같다.
동으로 바라보면 창망한 골짜기가 있으니 푸른 학이 있다는 靑鶴洞이다. 남
으로 바라보면 강 위로 두 봉우리가 있으니, 흰구름이 날아다니는 白雲山이다. 골짜기
속에 한 마을이 있어 너댓집이 사는데, 꽃과 대나무가 어지러이 비치고 닭울음과 개짖
는 소리가 함께 들린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의관이 순박하고 모발도 예스러우며, 생계
는 다만 밭 갈기와 우물 파는 것뿐이요. 서로 찾고 만나는 사람은 노스님뿐이다. 골짜기
에서 절 문에 가려면 남으로 수십 걸음 쯤 된다. 동서의 두 시내가 합해져서 한 골짜기
의 물을 이루는데, 맑은 물이 돌에 부딪히고 굽이치면 소리를 내고, 놀란 물결이 튀어
오르면 어지러이 눈꽃이 날려 기이한 광경을 만든다. 시내의 양쪽 언덕에는 수천의 돌
소[石牛]와 돌염소[石羊]가 누워 있으니, 이는 틀림없이 하늘이 험한 곳을 만들어 靈府
를 숨기려 한 때문이리라. 겨울에 얼음이 얼고 여름에 비가 오면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
지 못하므로 매우 걱정을 하게 된다.
명종16년 신유년(1561)여름에  그 산의 德士 玉崙이 道友인 祖演에게 부탁하자, 시냇
가에 누워 있는 돌소와 돌염소를 채찍질하여 기둥을 만들고 한 층의 다리를 놓았다.
다시 다리 위로 다섯 칸의 높은 누각을 일으키고 붉은 빛으로 곱게 색칠한 뒤, 이름을 紅
流橋와 凌波閣이라 하였다. 그 형상이, 아래로는 黃龍이 물결에 누워 있는 듯하고 위로는
붉은 봉황이 하늘로 나는 듯하다. 그 형세는 端禮의 鼀閣과 같으나 장의의 龜橋와는 아
주 달랐다.
山僧이 이곳에 이르면 선정에 들고, 騷客이 이르면 시에 대해 고민하며, 道士가 이르
면 환골탈태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볍게 바람을 타게 되나니, 옥륜. 조연 두 스님은 마음
을 먼 하늘에 붙이고 몸을 뜬 구름에 맡겨, 때로는 지팡이를 짚고 나와 그곳에서 한가히
읊조리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고 기대어 눕기도 하면서 미처 늙는 줄을 몰랐도다.
또 그 누각은 높아 백척 위로 올라가서 별을 따는 정취가 있고, 시야가 천리 밖까지
트여 하늘에 오르는 정취가 있다. 외로운 따오기와 떨어지는 노을을 보니 騰王閣의 정
취가 있고, 하늘 밖의 삼신산이 있으니 鳳凰樓의 정취가 있으며, 맑은 내와 꽃다운 풀이
있으니 黃鶴樓의 정취가 있고, 떨어진 꽃이 물에 떠내려가니 桃園의 정취가 있으며, 가
을의 비단에 수놓은 듯한 단풍이 있으니 적벽의 정취가 있고, 좋은 손님을 맞이하고 보
내니 虎溪의 정취가 있도다. 또 짐을 진 사람이나 짐을 인사람, 밭을 가는 사람, 고기 낚
는 사람, 빨래하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 바람 쏘이는 사람, 시를 읊는 사람, 고기를 구경하는 사람, 달을 감상하는 사람, 등 누구나 이 누각에 오르면 모두 그 즐거움을 누리게 되나니, 이 누각이 사람의 흥취를 돕는 것이 어찌 적다 하리.
그 뿐이 아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나 얼음이 얼고 눈이 올 때에도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옷을 걷어 올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쉽게 내를 건널 수 있게 하는 공덕 또한 크다고 할 것이다. 이렇듯 누각 하나가 이루어짐으로써 온갖 즐거움이 갖추어지게 되었으니, 어찌 현자라야만 이와같은 것들을 즐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옛날 하늘이 靈府를 숨겼던 것을 한탄하였더니, 지금 이 두 스님이 구름을 꾸짖고 그 것을
개봉하여 산과 절과 골짜기와 시내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이름을 숨기지 못하게 하였도다.
이제 어떻게 하면 維摩詰의 수단을 얻어 이 누각을 넓히되, 천칸 만칸, 심지어는 끝이 없는
칸수의 큰 집을 만들어 널리 천하 사람들을 두루 보호할 것 인가?

1564년(명종19) 갑자년 봄에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