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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사찰성보문화재 50選]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도

쌍계사
2021-08-20 15:40
작성자
쌍계사
작성일
2021-08-20 15:40
조회
701

“18세기 마지막 장식…완전한 형태 대형삼세불화”

1781년이라는 조성연대, 작가
시주자들의 명단까지 밝혀진
조선후기 한국불화 대표 불화

과거-현재-미래 시간 보다는
공간 개념, 현세 석가여래
동방정토 약사여래와 함께
서방정토 아미타여래 조성

정교한 필치에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색채감 당대 대표 수작
세 불화 모두 스님들이 그린 것
불화장인 계보 파악 중요 자료

 


하동 쌍계사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고 있다. 722년(신라 성덕왕 21)에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三法)화상이 육조혜능대사(六祖慧能大師)의 정골(頂骨, 머리뼈) 사리를 봉안하고 세웠다. 이후 진감선사가 사찰을 크게 일으켰으며, 이때 사찰명도 쌍계사라고 했다.

쌍계사 대웅전 앞에는 ‘진감선사탑비(국보 제47호)’가 세워져 있다. 진감(眞鑑)은 호이고 법명이 혜소(慧昭)인 진감선사는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쌍계사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진감선사는 또한 한국 범패의 선구자이다. 진감선사 입적 후 왕명을 받아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최치원(857~?)이 비문을 짓고 썼다. 이 비문은 한문학의 최고 절정으로 평가될 정도로 표현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감동을 주는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도’는 정교한 필치와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색채감을 보여 주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모두 스님들의 작품이어서 더 주목된다. 왼쪽부터 아미타불도(495×314.5cm,비단바탕에 채색, 1781년), 석가불도(474×316.5cm, 비단바탕에 채색, 1781년), 약사불도(496×320.5cm. 비단바탕에 채색, 1781년).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도’는 정교한 필치와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색채감을 보여 주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모두 스님들의 작품이어서 더 주목된다. 왼쪽부터 아미타불도(495×314.5cm,비단바탕에 채색, 1781년), 석가불도(474×316.5cm, 비단바탕에 채색, 1781년), 약사불도(496×320.5cm. 비단바탕에 채색, 1781년).
➲ 임란 후 대형화된 후불도로 조성

오늘 소개할 성보는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도(보물 제1364호)’이다. 삼세불이란 과거세와 현재세, 미래세에 출현한 부처님을 말한다. 이 불화는 석가모니불도(釋迦牟尼佛圖)를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도(藥師佛圖)와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를 배치한 3폭 형식이다.

‘삼세불도’는 한 폭의 크기가 가로 3.2m에 세로 5m에 이르는 대형 불화로, 비단에 세 폭으로 구성됐다. 원래 대웅전 후불도로 봉안했던 것을 현재는 쌍계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봉안하고 있다. 이 ‘삼세불도’는 1781년이라는 조성연대와 작가와 시주자들의 명단까지도 밝혀진 조선 후기 한국 불화를 대표하는 불화이다.

이 시기 대형불화가 조성된 배경은 무엇일까. 임진왜란 후 전쟁의 피해를 입은 사찰들은 재건에 총력을 기울였는데, 이때 불전도 대형화되며 그 안에 봉안된 불상과 불화도 규모가 크게 조성됐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여러 종파가 합쳐지는 통불교(通佛敎)화 되어 다양한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이 건축되고 이에 따라 각종 불화가 제작됐다. 또한 커다란 불전에 대형불화가 조성되기 시작하는데, 이러한 조건에 가장 적합한 것이 삼세불도였다.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도’처럼 석가여래와 약사여래, 아미타여래의 구성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에 따른 삼세불이라기보다는, 공간으로 나눈 즉 현세의 석가여래와 동방정토의 주인인 약사여래, 그리고 서방정토의 주인인 아미타여래를 함께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삼세불도가 유행한 것은 당시 중생들이 가장 사랑했던 석가여래와 약사여래, 그리고 아미타여래를 함께 봉안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쌍계사도 전란으로 피해가 매우 커서 국가의 후원을 받으며 대웅전 중창 등 사찰재건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1640년(인조 18년)까지 금당 영역의 복구와 함께 새롭게 대웅전 영역을 조성했다. 대웅전 안에 봉안된 목조삼세불상도 1639년에 조성된 것이다. 대웅전 후불도인 ‘삼세불도’는 1781년부터 국사암에 총 8~9점의 불화를 조성하는 등 대규모의 불사가 진행되었던 시기에 조성된 것이다. 아마도 1639년 삼세불 조성 때 함께 조성된 불화가 150여 년의 세월이 흘러 훼손되자 이를 대체하고자 ‘삼세불도’를 새로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가불도(474×316.5cm, 비단바탕에 채색, 1781년).
 석가불도(474×316.5cm, 비단바탕에 채색, 1781년).
 

➲ 압도적 크기 주존불 ‘초월적 존재’

‘삼세불도’를 한 폭 한 폭 살펴보자. 이 불화는 각기 본존불을 중앙에 두고 기타 존상(尊像)들이 에워싼 소위 군도식(群圖式) 구도를 하고 있다. 가운데 봉안된 ‘석가불도’에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석가여래를 중앙에 배치했다. 석가여래의 신체는 그림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려져 있다. 적색과 녹색을 주색으로 채색되어 보색대비를 이루었고 색상은 원색적이다.

석가여래 아래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 있다. 그 주변으로 보살과 10대 제자, 연등불, 미륵불, 범천, 제석천, 사천왕, 용왕, 용녀, 신장상 등 총 32명의 존상이 좌우대칭으로 석가여래를 에워싸고 있다.

향해서 우측에 있는 ‘약사불도’는 약사여래가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다.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아래에 일광보살·월광보살이 시립해 있고, 좌우로 대칭되게 보살과, 사천왕, 12신중을 배치했다. 중앙에는 약사여래 역시 화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려 주존(主尊)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미타불도’는 향해서 좌측에 있다. 중앙에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아래에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서 있다. 주위에는 보살과 제자, 타방불, 사천왕, 금강 등 여러 존상을 좌우대칭으로 배치했다.

세 폭의 불화 모두 수미대좌에 앉은 본존을 화면 중앙에 꽉 차게 배치해서 주존불을 더욱 부각시켰다. ‘삼세불도’에서 주인공인 여래는 거대한 신체에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각진 어깨와 방형의 얼굴, 작은 입에 근엄한 표정을 한 여래는 신성한 초월적 존재감을 보여준다. 협시보살과 일부 보살은 예배자를 응대하여 주는 듯이 정면을 바라보며 서 있다.

색채는 적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했고 절제된 색채미를 보여 준다. 주목되는 점은 사천왕의 갑옷이나 보살의 구슬 장식 등에서 부분적으로 보이는 표현기법이다. 불화를 자세히 보면 장식효과를 주기 위해 농도가 짙은 호분을 올려 두툼하게 하고, 그 위에 금으로 채색한 돋음기법을 쓰고 있다.

 

석가불도 화기란(시주질). ‘가선대부’, ‘통정대부’라는 관직을 가진 스님들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 눈길을 끈다.

 

석가불도 화기란(시주질). ‘가선대부’, ‘통정대부’라는 관직을 가진 스님들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 눈길을 끈다.
 

➲ 규모 큰 화사집단에 의해 조성

불화의 맨 아래쪽에는 적색으로 화기란을 만들어 불화제작과 관련된 정보를 적고 있다. ‘석가불도’의 화기에는 1781년 5월에 하동 지리산 쌍계사 대법당의 영산탱으로 조성되었음을 적었다. 화기란은 크게 시주질(施主秩)과 연화질(緑化秩)로 나누어져 있다. 시주질에서 많은 승려와 일반신도들이 참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가선대부(嘉善大夫), 통정대부(通政大夫)라는 관직을 가진 스님들의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

연화질에는 불사에서 맡은 소임을 세분화하여 적었다. 특히 화사(畵師) 명단에는 금어 승윤과 편수 평삼을 비롯한 19명의 화승들이 기록되고 있어 불화가 규모가 꽤 큰 화사집단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약사불도’의 시주질에서는 구체적인 시주품목에 대한 시주 내용을 기재하고 있다. ‘아미타불도’의 시주질에는 쌍계사 주변 사찰인 다솔사, 용문사, 서봉사, 옥룡사 등이 함께 시주하여, 이 불화를 조성하는 데 참여하였음을 기록했다. 마지막에는 ‘원차공덕공성불도(願此㓛德共成佛道)’라 하여 이 불화를 조성한 공덕으로 모든 중생이 함께 불도를 이루고 성불하기를 소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불화들은 모두 스님들이 그린 것이다. ‘석가불도’는 승윤(勝允), 만휘(萬輝), 홍원(泓源), 지순(智淳) 등이 그렸다. ‘아미타불도’는 평삼(平三), 함식(咸湜), 왕인(旺仁), 찰삼(察三), 극찬(極贊)등이 그렸고, ‘약사불도’는 함식, 왕인, 극찬, 계탁(戒卓) 등이 그렸다. 이 스님들은 18세기 전반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 화사인 의겸(義謙)스님의 영향을 받은 불화의 장인들이다.

이처럼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도’는 조선 후기 불화 장인의 계보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며, 완전한 형태를 갖춘 18세기 후반의 대형 불화이다. 정교한 필치와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색채감을 보여 주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지리산 자락의 쌍계사(雙磎寺) 근처에는 화개(花開)라는 곳이 있다. 꽃이 얼마나 만발했으면 이렇게 불렀을까. 또한 섬진강을 두고 경상도 사람들과 전라도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쌍계(雙磎)의 두 개울이 만난다는 사찰명과도 어울리는 고장이다.

쌍계사는 선(禪), 다(茶), 음(音)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올여름 지리산 계곡의 청량함과 섬진강의 노을을 보면서 더위를 보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불교신문3679호/2021년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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