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는 육조혜능조사의 정상(두상)을 모신 금당 영역과 삼존불 사보살을 모신 대웅전영역 그리고 문화예술 영역으로 나눌수 있다.
승장崇禎 연간(1628~1644)의 중창 이후 창건주 진감국사에 의해 이루어진 금당영역과, 벽암각성스님에 의해 중창된 대웅전영역 그리고 고산혜원대선사에 의해 이루어진 문화예술관 영역의 세 공간으로 분할되는 독특한 가람구성을 이루게 되었다.
즉 청학루 · 팔상전 · 금당으로 이어지는 금당 영역과, 일주문 · 팔영루 ·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대웅전영역. 해탈교를지나 대불과 문화예술관 영역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금당영역은 남북의 축선軸線을, 대웅전은 동서의 축선을 갖게 되어 두 영역이 서로 직교直交하는 가람배치가 형성되었다.
또한 금당영역의 정면에 있던 진감선사대공탑비는 그대로 남향을 하고 있는데 대웅전은 서향을 취하는 파격적인 구도를 나타나게 된 것이다.
쌍계의 한 계곡 건너편에 대불과 문화예술관을 건립하므로 해서 완전한 사격을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세 영역으로 나누어 배치하게 된 것은 가람터가 좁다는 입지적 조건에 의한 것이다.
지세를 살펴보면, 금당영역은 국사암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경사가 급하여 가람조성을 하단 · 중단 · 상단으로 구성하고 있다.
배경이 되는 산봉우리는 지리산의 주봉인 토끼봉 · 형제봉으로 이루어지며, 금당영역은 특별히 주산主山의 의미보다는 남북의 방위개념이 두드러진다.
지금의 대웅전영역은 삼신봉三神峰을 주산으로 하여 쌍계를 끼고 있는 동에서 서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산지가람을 형성하기에 알맞다고 할 것이다.
문화예술관영역은 쌍계의 한 계곡건너편에 대불과 문화예술관을 건립하므로 해서 수행과 신행 그리고 현대포교의 공간을 완성하여 완전한 사격을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