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조사

창건조사

진감혜소대선사(眞鑑慧昭⼤禪師)

국보47호인 ‘진감선사대공령탑(眞鑑禪師⼤空靈塔)’비에 의하면, 진감선사 혜소(慧昭)는 전주 금마(현 익산) 사람으로 774(혜공왕 10)년에 출생했습니다. 아버지는 최창원(崔昌元)으로 재가신도이면서 출가한 스님과 같이 수행했습니다. 어머니 고씨(顧⽒)가 어느 날 잠깐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한 인도 승려가 찾아와 “내가 어머니의 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하고는 유리항아리를 주고 갔으며, 그 후 진감선사혜소를 잉태하여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진감선사 혜소의 선조는 한족(漢族)으로 산동지방의 벌족(閥族)이었는데 수·당의 고구려 원정 때 종군하여 고구려에 왔다가 금마사람이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이 안승을 따라 금마에 많이 정착하게 되어 신라 골품제 사회 속에 재편성되는데, 이때 고구려 유민임을 숨기고 요동정벌군의 당나라 사람으로 자처한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울지 않았으며 7~8세가 되어 아이들과 놀 때에는 언제나 나뭇잎을 태워 향을 삼고 꽃을 따서 공양을 올리는가 하면, 때로는 서쪽을 향해 꿇어앉아 해가 저물어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았으나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생선장수를 하며 가족을 봉양하는데 힘썼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길러 주신 은혜를 오로지 힘으로써 보답하였으니, 이제 도의 뜻을 어찌 마음으로 구하지 않으랴” 하였습니다.

31세 되던 804(애장왕 5)년에 세공사(歲貢使)에게 가서 뱃사공이 되기를 청하여 중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때 육조혜능조사의 법손인 창주(滄洲)의 신감대사(神鑑⼤師)를 만나게 되었는데, “반갑다.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기쁘게 다시 서로 만났구나”라고 하면서 맞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37세(810)에 숭산(崇⼭) 소림사(少林寺) 유리계단(瑠璃戒壇)에서 구족계를 받으니, 어머니가 꾼 꿈과 일치하였습니다. 계를 받고 나서 경을 배웠는데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아 스승을 능가하였습니다. 이때 우리나라에서 온 도의선사(道義禪師, 후에 가지산문의 제1조)를 알게 되었으며, 821년 도의선사가 귀국한 뒤에도 진감혜소선사는 종남산(終南⼭) 높은 봉우리에 들어가 소나무 열매를 먹으며 3년간 정혜를 닦았습니다. 그 후 3년 동안 자객(紫閣)으로 나와 짚신을 삼아 널리 보시하다가 57세(830)에 드디어 귀국하니 흥덕왕이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상주 로악산(露岳⼭) 장백사(지금의 남장사)에 주석하게 되자 찾아오는 이가 구름과 같아서, 좋은 경계를 찾아 남령의 강주 지리산에 이르렀습니다. 지리산(현 국사암)에 머물며 선(禪)을 전파하면서 넓은 가람(절)터를 찾던 중, 어느 날 호랑이 몇 마리가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앞길을 인도하여 위험한 곳을 피해 평탄한 곳으로 가니, 이곳이 바로 화개곡(花開⾕)의 옛날 삼법화상이 남긴 절터였습니다.
이 터에 육조영당을 짓고 대나무통으로 물을 끌어와 집둘레 사방에 물을 대어 ‘옥천사(⽟泉寺)’라 명명하니. 곧 쌍계사의 창건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65세(838)에 민애왕이 왕의 자리에 올라 불교에 깊이 의탁하였는데, 스님을 친견하기를 수차 청하였으나 스님은 “부지런히 선정에 힘쓰는 것이 본분”이라며 끝내 응하지 않았습니다. 선사께서는 육조혜능조사의 영당을 세우고 채색·단청하여 널리 중생제도에 이바지하였으며, 고운 최치원선생은 “혜원공(慧遠公)의 노산(廬⼭) 동림사(東林寺) 경치(호리병속의별천지)를 신라에 옮겨 왔다”고 찬탄하였습니다. 850(문성왕 12)년 정월 9일 이른 아침, 문인들에게 “만법이 모두 공하니 내가 장차 가려 한다. 일심으로 근본을 삼아 너희들은 힘써 노력하라. 탑을 만들어 유체를 보존하지 말고 명(銘)으로써 행적을 기록하지도 말라”는 말을 마치고 앉아서 입적했습니다.

진감선사에 의해 비로소 쌍계사가 처음으로 가람의 면모를 드러내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옥천사(⽟泉寺)라 불렀습니다. 헌강왕이 즉위하여 보니 이웃 고을에도 같은 이름의 옥천사가 있으므로 백성들이 미혹할까 염려하다가, 그 절터를 살펴보니 동구에 두 시냇물이 마주 대하고 있으므로 ‘쌍계사(雙磎寺)’라는 제액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옥천사는 쌍계사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선사는 신라에 육조 남종선을 최초로 전파하였으며 불교의식인 범패를 가르침으로 불교의식을 완성했고, 차나무를 화개곡(동) 일대에 번식시켜 이것이 다도의 시작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