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금강산을 봉래산, 한라산을 영주산, 지리산을 방장산이라 하여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三神⼭)이라 불렀다. 쌍계사는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丈⼭)이라 불리는 지리산(智異⼭) 남록(南麓)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이다.
쌍계사는 개산(산문을 열다.)과 창건 둘로 나눈다.
개산은 통일신라 724(성덕왕23)년에 삼법三法, 대비⼤悲 두 스님이 중국선종의 6대조인 육조혜능조사의 정상(두상)을 모시고 설리갈화처(雪裏葛化處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정상을 봉안한 것이 개산(산문)을 처음 연 것이다.
창건은 840(문성왕2)년에 진감혜소眞鑑慧昭(774~850)선사가 당나라 육조혜능조사의 선법을 잇고 귀국하여 삼법, 대비 두 화상께서 육조혜능조사의 정상을 봉안한 곳에 조사의 영당影堂을 짓고 절을 크게 확장하여 옥천사⽟泉寺라 하고 이곳에서 선禪과 불교 음악인 범패梵唄를 가르쳤다.
진감혜소선사가 창건하기 전인 828(흥덕왕2)년에는 대렴공이 당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면서 차나무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은 차나무를 화개 일대에 번식시키고 77세로 입적⼊寂하니 승납僧臘41세였다. 그 후 헌강왕獻康王은 이웃 고을에 옥천사가 있어 사람들이 미혹할까 염려하다가 이곳 옥천사는 산문밖에 두 시내가 만나 흐르니 ‘쌍계사’라는 사명寺名을 내려 지금에 이른다.
일찍이 통일신라시대 대학자인 고운최치원선생은 쌍계사를 ‘호리병 속의 별천지壺中別有天地’라고 극찬을 했고, 그 옛날 이상세계를 꿈꿨던 사람들이 그 실현을 위해 살았던 곳을 ‘청학동’이라고 하는데 청학동이 바로 불일산방 아래에 있다.
쌍계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다녀가는 청소년들은 ‘꿈속에서 왔다 간 것 같다’라고 쌍계사의 아름다움을 소감문으로 표현 한다.
서산대사의 중창기를 보면 중섬中暹, 혜수蕙修스님의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
임진왜란 후 벽암碧巖, 소요逍遙, 인계印械, 법훈法訓, 용담⿓潭스님 등이 중창을 하였고, 이후 1975년부터 고산杲⼭대선사에 의해 복원復元, 중수重修 중창重創을 거쳐 현재와 같은 대가람(가치가 높거나 규모가 큰 절)의 사격을 갖추고 있다.
쌍계사에는 국사암, 불일암, 도원암 등 산내암자가 있고, 그 외에도 죽기 전에는 나오지 말라는 상사관원과 하사관원이 있으며 청학동에는 불일산방이 있다.
문화재로는 국보 1건, 보물 12건 391점(경판 3종 368매 포함),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13건 1390점(경판 30종 1375매), 문화재자료 5건, 국가지정(2022) 명승(‘쌍계사일원’과 ‘불일폭포일원’)이 있고, 경상남도 기념물 제61호인 차나무 시배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