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성총대선사 栢庵性聰⼤禪師

백암성총대선사 栢庵性聰⼤禪師

1631 - 1700

쌍계사에서 불조의 가르침을 전한 스님
강원교재인 “치문경훈주”를 저술
경전을 판각하여 쌍계사에 소장

“대사는 1631(인조 9)년 11월 15일 申時에 현 전북 남원군에서 탄생하셨다. 법명은 성총性聰, 법호는 백암栢庵이며 성은 이씨이다. 아버지는 강棡이요, 어머니는 하河씨다. 1643(인조 21)년 13살 때 전북 순창의 취암사鷲巖寺로 가서 머리를 깍고, 16살 때 구족계를 받았으며 1648(인조 26)년에 지리산 취미수초翠微守初대사에게 9년 동안 수업하여 가르침을 다 이어받았다.

1657(효종 8)년에 곡성군 도림사道林寺 선덕암禪德庵에 주석하면서 1660(현종 원년)년에 비로소 개강開講하여, 이때부터 순천 송광사, 낙안의 징광사, 하동 쌍계사 등 여러 산을 두루 다니며 불조의 가르침을 펴고 배우는 이들을 이끌었다. 1673(현종 13)년부터 영광군 해불암 海 佛 庵 에 있다가 1676(숙종 2)년에는 송광사 은적암隱寂庵으로 옮겼다. 이듬해에 승주군 주암면에 있는 대광사⼤光寺에 머물렀으며 다음해에 송광사 보조국사비와 사적비를 건립하였다.

1681(숙종 7)년 중국의 상선이 폭풍을 만나 정처없이 표류하다가 서해 무안군의 임자도荏⼦島로 밀려왔는데, 가득 실린 법보法寶가 모두 해수에 침습되어 유실되고 파책을 이룬 것이 많았다. 그 태반은 선사들의 손을 거쳐 조정으로 옮겨졌고, 나머지는 몇으로 나누어 연해의 여러 사찰에서 왕왕이 얻어갔다. 백암의 해동신각청량화엄소초후서에서 “지난번 대장경을 실은 배 한척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우리나라 해역에 정박하였다. 그 배 안에는 명나라 섭평림거사가 교감하여 간행한 80권 전부가 있었는데 다행스럽게 그것을 모두 입수할 수 있었다.

대사는 다음해 여름 불갑사佛岬寺에 갔다가 이 소식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해 내소사來蘇寺, 연기사烟起寺, 선운사禪雲寺등과 연해의 여러 산을 왕래하면서 경전을 수집하였다. 그러나 산질된 것이 많아 그 후 9년 동안 궐본을 보완하였다. 그 결과 명나라 평립거사平林居⼠의 교간본인 『화엄경 소초華嚴經疎鈔』와 『대명법수⼤明法數』,『회현기會⽞記』, 『금강기⾦剛記』, 『기신소起信疏』, 『정토보서淨⼟寶書』등 400여 권을 얻었다.

1685(숙종 11)년부터 완질된 법보를 낙안군 징광사澄光寺(지금은 폐사됨)로 보내 간행을 시작하여 이듬해 봄에 먼저 『금강기』를 간행하고, 다음으로『사경지험四經持驗』, 그 다음에 『사집私集』을 간행하였다. 또 다음 해에는 『화엄소초』와 『대명법수』를 간행하였다. 대사는 1689(숙종 15)년 봄에 징광사로 돌아와 화엄연의초, 대명법수간정기, 정토보서, 영험록등의 서적을 간행하였다. 모든 역사를 독려하고 화엄華嚴, 영산靈⼭의 두 탱화를 완성시켰으며, 다음해 5월 5일에 낙성천등불사落成千燈佛事를 행하였다. 이에 이들 법보가 비로소 여러 사찰에 전파되자, 제방의 불자들이 따라 우러르며 대종사⼤宗師라는 경칭을 바쳤다.

송광사 백암의 비음기에 의하면 경이 표류하여 도착했을 때부터 숙종21년까지 무려 15년에 걸쳐 5천의 판각을 만들고 징광사, 쌍계사에 수장收藏하였다고 한다. 다음해(61세)에는 선암사의 창파각滄波閣에서 화엄대회를 베푸셨는데, 이는 『화엄소초』를 맞아들인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방의 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1695(숙종 21)년에는 쌍계사로 나아가 성능상인에게 『회현기』40권과 『필삭기筆削記』4권을 간행, 유포하도록 명하였고, 다음해에는 능가사(전남 고흥군)로 나아가 팔상전을 창건하고 또 석가, 미타상을 조성하도록 명하였다.

1700(숙종 26)년 7월 25일 쌍계사 신흥암新興庵에서 입적하시니 나이 70세요, 법랍 55년이었다. 다비하는 날 저녁에 정골精⾻ 2과를 얻어 송광사와 칠불암에 탑을 세웠다.

대사는 내외전에 널리 통달하여 『자주치문』3권 외에도 사집私集 2권, 제경서諸經序 9수, 정토찬淨⼟讚 백수를 간행하여 세상에 유포하였다. 방외에서 사귄 이들로는 당시의 이름있는 사대부인 김문곡⾦⽂⾕, 정동명鄭東溟 남아곡南壺⾕, 오서파吳西坡 등 여러 공公들이 있다. 입적 후 66년인 1766(영조 42)년 여름에 현법손⽞法孫인 묵암黙庵 제운霽雲 두 노사가 대사의 아름다운 자취를 영원히 전하기 위하여 송광사의 부도전 북원北元에 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