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속의 쌍계사

"저, 대웅전 문닫을 시간인데요..."

ssanggyesa
2010-12-01 15:32
작성자
ssanggy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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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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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대웅전 문닫을 시간인데요..."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언제부터인가 3천 배를 해보고 싶었다. 극한에 대한 도전 욕구는 아니었다. 부처님이든 예수님이든 길가의 촌부이든 누군가에게 머리와 허리를 숙여 이마를 땅에 대며 3천 번 절을 하는 겸손의 마음을 느끼고 싶었다. 몇 시간 동안 절만 했을 때 느껴지는 무념무상의 공허함으로 머리와 가슴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여행 중에 마음에 닿는 사찰을 만나게 되면 3천 배를 올려야겠다는 마음은 갖고 있었지만 계속 미뤄졌고, 내 여행은 조금씩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3천배를 하고자하는 내 계획이 다시 기약할 수 없는 먼 미래의 일이 될 것만 같았다.

하루 걸음이면 여행이 끝나는 경남 하동에서 발걸음을 지리산 쌍계사로 돌렸다. 그곳에서 3천배를 마치지 못하면 내려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가슴이 떨렸고, 내가 괜한 선택과 결심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발걸음을 쌍계사로 향하며 설레고 떨리는 기분으로 여러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들 달랐다. 친구인지, 애인인지 나 스스로도 헷갈리는 한 여인네는, "너 지금 3천배 하면 앞으로 나 볼 생각하지 마라. 무릎도 안 좋다면서 하루 종일 걷는 것도 부족해 꼭 지금 그걸 해야 하냐? 암튼, 그짓하면 다시는 너 안 볼테니까 알아서 해라"라며 조금 공격적인 어투로 말리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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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스님이 힘차게 북을 치고 있다.
ⓒ2004 박상규
친구들과 후배들은, "그냥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가지 그래?" 부터 시작해, "나 취직 시켜달라고 빌어라", "로또 대박 한 번 터지게 빌어주라" 등 많은 이야기와 소망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나 집의 반응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딴에는 집에 전화하면서 약간이라도 위로를 받고자 했는데 그런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큰누나에게 곧 3천배를 시작한다고 말했더니,

"그래 상규야, 너 하나 희생해서 우리집 복 좀 받아보자. 힘들더라도 꼭 3천번 채워라 알았지? 중간에 포기하면 절대 안돼. 자세 흐트러지지 말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해라. 꼭 3천 번 채우고 내려와!"

이럴 땐 역시 미우나 고우나 내 걱정해주는 여인네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계사 경내에 들어섰을 땐 이미 푸르스름한 어둠이 내려 앉았다. 사찰과 지리산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가 내 신경을 잡아 끌었다. 스님이 거대한 북을 치고 있었다. 어둠을 물리치려는 듯, 무거운 적막감에 정신이 물들지 않게 하려는 듯 스님은 힘차고 경쾌하게 북을 두드렸다. 스님의 몸짓과 북소리는 마음 속 감동까지 일렁거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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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종소리가 지리산에 은은하게 퍼졌다
ⓒ2004 박상규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쌍계사 대웅전으로 들어섰다. 많은 스님들이 저녁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함께 예불을 드린 후 나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드디어 3천배를 시작했다.

다리를 모아 똑바로 선 채 머리를 약간 숙여 손을 가슴 앞으로 끌어모아 합장한다. 그 자세에서 천천히 무릎부터 바닥에 대고 허리를 숙여 이마를 바닥에 댄 후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다. 그리고 반대로 다시 일어선다.

이렇게 3천배를 시작하는데 처음엔 바로 잡히지 않는 자세 때문에 무척 애를 먹었다. 300회 정도를 반복하니 몸이 풀려 이제 좀 편하게 되는가 싶었는데, 500회 정도 부터는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가쁘기 시작했다.

힘들었지만 온화한 부처님을 바라보며 절을 하는 게,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조용한 지리산 사찰에서 홀로 3천배를 올리는 내 스스로가 흐뭇했다. 주변 사위는 무척이나 고요했다. 그렇게 얼마 쯤 계속 절을 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소원비는데 죄송합니다. 여기 대웅전 문을 닫아야 하는데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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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천배를 모두 마치니 쌍계사에는 푸른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2004 박상규
사찰관계자는 국보급 보물이 있어서 저녁에는 대웅전 문을 닫고 새벽 3시 새벽 예불 때 다시 연다고 했다. 나는 정확히 824배를 올린 후였다. 어쩔 수없이 저녁부터 시작해 아침 해가 떠오를 즈음에 3천배를 마치고자했던 내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했다.

다음날 4일 오전 10시부터 다시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어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고작 800회 조금 넘은 절을 올린 내 다리는 심하게 후들거렸다. 다시 시작하려는 내 마음과 달리 몸은 자꾸만 피하려는 듯했다.

몸이 더 꾀병을 부르기 전에 절을 시작했다. 어제 저녁만큼의 속도가 나지 않았다. 다리와 허리는 뻐근했고 숨은 더욱 가빠졌다. 부처님 얼굴 한 번 바라보고 엎드려 절하고 다시 일어나 부처님 얼굴 한 번 바라보고….

그렇게 절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이야기를 했다.

"잘못 했습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시옵고 우리 조카들 아무 탈 없이 성장하게 해주십시오. 내 주변 사람들 건강하게 해주시고 뜻하는 바대로 살게 해주십시오…."

절을 하면서 수없이 빌고 또 빌었다. 그동안의 잘못을 반성했고, 앞으로 착하게 살겠으니 한 번만 도와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렇게 나는 땀을 떨구며 내 이마를 부처님 앞에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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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쌓았을 소망 돌탑이 고즈넉히 있다
ⓒ2004 박상규
정확히 목표치의 절반인 1500회부터는 다리와 무릎 통증 때문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가끔은 절을 하는게 아니라 앞으로 고꾸라졌고, 일어서려다가 뒤로 벌러덩 자빠지기도 했다.

조금씩 3천배를 도전한 내가 후회되기 시작했다. 속도는 이미 현저히 느려졌고 자세도 이미 흐트러졌다. 손을 합장하고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한동안 꿋꿋이 선 채 쉬며 부처님 얼굴을 바라봤는데, 부처님 얼굴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내 마음을 훤히 읽고 계신 듯싶었다.

그야말로 무념무상으로 절을 하기 시작했다. 숫자를 세기도 귀찮아졌다. 2000회가 넘어설 즈음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이 정도만 해도 많이 했다는 식의 얄팍한 마음이 내 의지를 넘어섰다. 살짝 포기할까하는 마음을 먹고 부처님을 바라봤더니, "이놈 또 잔머리를 굴리는구나"하며 꾸짖는 것 같았다.

의지를 벗어나면 '악밖에 남는게 없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불경스러운 말이겠지만, 정말이지 나를 향한 부처님의 '비아냥'이 화가 나 악으로 버텼다. 2500회가 넘은 순간부터는 마음이 가벼웠다. 500번을 더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 보다는 이제 겨우 500번밖에 남지 않았다는 흥이 앞섰다. 이번엔 흥에 겨운 나에게 부처님이, "요놈 그래도 제법인걸"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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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를 내려가는 길에 가로등이 켜졌다
ⓒ2004 박상규
숫자를 늘려가는 재미가 아니라 숫자를 줄여가는 재미로 절을 해나갔다. 마음에서 조금씩 풍만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제 곧 끝이구나'하는 희열이 생겼다. 더디지만 멈추지 않는 몸짓으로 마침내 3천 번을 다 채웠을 때. 지리산과 쌍계사에는 이미 해가 사라졌고 해질녘의 푸르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내 얼굴과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기대했던 만큼의 기쁨이나 뿌듯함은 없었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머리를 3천 번 조아렸다는 겸손함의 느낌은 흐뭇했다. 모든 것을 마치고 쌍계사 대웅전을 나서며 다시 부처님 얼굴을 쳐다보고 불경스러운 마음을 품었다.

"부처님, 저는 3천 번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이번엔 부처님 차례입니다. 제가 부탁했던 것 꼭 들어주십시오"

쌍계사를 내려오는 길은 다리가 후들거려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래도 내 입에서는 흥겨운 노래가 절로 나왔다. 다시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3천배 완성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번엔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다.

"뻥이지?"부터 시작해, "선배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봐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않을게요. 거짓말이죠?"까지 말은 달랐지만 믿지 않는 건 똑같았다. 그리고 집의 반응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충격적이었다.

"야, 솔직히 말해봐. 너 정말 3천번 다 채웠어? 니가 숫자 셌어 아니면 다른 사람이 셌어? 앞으로도 우리집 재수 없으면 니 책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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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에, 쌍계사에, 내 머리 위에 달이 떴다
ⓒ2004 박상규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도 좋았다. 그래도 친구인지 애인인지 헷갈리는 여인네는 나를 믿어주었다. 내가 3천 번 다 채우고 전화를 했을 때, 얼굴 안보겠다는 처음의 협박과는 달리, "빨리 서울에 와. 내가 도가니탕 사줄게. 무릎 아픈데는 도가니탕이 최고라는 말이 있더라"하고 말해 나를 미소짓게 했다.

3천 배를 하는데 9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앞으로도 그렇게 천천히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나아가리라 다짐해본다. 다리가 무척이나 아프다.
/박상규 기자 (comune414@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