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금강산을 봉래산, 한라산을 영주산, 지리산을 방장산(⽅丈⼭)이라 하여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三神⼭)이라 불렀습니다. 쌍계사는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이라 부르던 지리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입니다.
쌍계사는 개산(산문을 열다.)과 창건 둘로 나눠집니다.
개산은 통일신라 723(성덕왕22)년에 삼법(三法), 대비(⼤悲) 두 스님이 중국선종의 6대조인 육조혜능조사의 정상(두상)을 모시고 설리갈화처(雪裏葛化處,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정상을 봉안한 것이 ‘개산’입니다.
창건은 통일신라 840(문성왕2)년에 진감혜소(眞鑑慧昭, 774~850)선사가 당나라 육조혜능조사의 선법을 잇고 귀국해 삼법, 대비 두 화상께서 육조혜능조사의 정상을 봉안한 곳에 조사의 영당(影堂)을 짓고 절을 크게 확장하여 옥천사(⽟泉寺)라 하고 이곳에서 선(禪)과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를 가르쳤습니다.
진감혜소선사가 창건하기 전인 통일신라 828(흥덕왕2)년에는 대렴공이 당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면서 차나무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은 차나무를 화개 일대에 번식시키고 77세로 입적(⼊寂)하니 승납(僧臘) 41세였습니다. 그 후 헌강왕(獻康王)은 이웃 고을에 옥천사가 있어 사람들이 미혹할까 염려하다가 산문밖에 두 시내가 만나 흐르니 ‘쌍계사’라는 사찰 이름을 내려 지금에 이릅니다.
일찍이 통일신라시대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 선생은 쌍계사를 ‘호리병 속의 별천지(壺中別有天地)’라고 극찬을 했고, 그 옛날 이상세계를 꿈꿨던 사람들이 그 실현을 위해 살았던 곳을 ‘청학동’이라고 하는데 청학동이 바로 불일산방 아래에 있습니다.
쌍계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다녀가는 청소년들은 ‘꿈속에서 왔다 간 것 같다’라고 쌍계사의 아름다움을 소감문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서산대사의 중창기를 보면 중섬(中暹), 혜수(蕙修)스님의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후 벽암(碧巖), 소요(逍遙), 인계(印械), 법훈(法訓), 용담(⿓潭)스님 등이 중창을 하였고, 이후 1975년부터 고산(杲⼭)대선사에 의해 복원(復元), 중수(重修) 중창(重創)을 거쳐 현재와 같은 대가람(가치가 높거나 규모가 큰 절)의 사격을 갖추게 됐습니다.
쌍계사에는 국사암, 불일암, 도원암, 덕봉암, 응봉암 등 산내암자가 있고, 그 외에도 죽기 전에는 나오지 말라는 상사관원과 하사관원이 있으며 청학동에는 불일산방이 있습니다.
문화재로는 국보 1건, 보물 13건 392점(경판 3종 368매 포함),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12건 1389점(경판 30종 1375매), 문화재자료 5건, 국가지정 명승(‘쌍계사일원’과 ‘불일폭포일원’)이 있고, 경상남도 기념물 제61호인 차나무 시배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