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 전체가 국가지정 명승(2022)이다.
불일폭포는 금당 돈오문에서 국사암쪽으로 300미터 정도 가면 삼거리 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국사암이요, 오른쪽으로 가면 불일폭포이다. 불일폭포 방향으로 100미터 정도 더 가다 보면 왼쪽등선에 진감선사의 승탑이 있고, 이 길로 계속 걷다 보면 불일교가 나온다. 쌍계계곡에는 옆새우, 도룡뇽 등 여러종류의 생물들이 살고 있고, 너구리 고라니 등의 동물들도 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병꽃나무, 산딸기, 국수나무, 철쭉등 키 작은 가장자리 식물들도 자라고 있다. 풍화작용으로 인한 바위들의 흐트러짐은 신기하기만 하다. 원숭이 바위(원암猿巖)와 고운최치원선생이 학을 불러 타고 청학동으로 갔다는 환학대(喚鶴臺)와 말의 발을 씻었다는 마족대(馬族臺)가 있다. 마족대를 지나면 청학동이라 불리는 ‘불일평전’이 나온다. 이렇듯 명승길은 걸을수록 자연의 신기함을 더해준다. 고려시대 문인 이인로(1152~1220)가 저술한 파한집에는 쌍계석문과 청학동이 소개되어 고운 최치원 선생의 신사상 즉 이상향인 청학동으로 묘사되고 있다.
김일손은 두류기행록(1489)에서 ‘등구사에서 이곳(쌍계사)에 이르기까지 16일이 지났는데 지나는 곳마다 온갖 바위들이 빼어남을 다투고, 많은 골짜기 물이 흘러 기쁘고 놀랄만한 경치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염두에 두는 곳은 오직 ’불일암‘ 뿐이었다.’라고 극찬을 했다. 그는 부처에게 ‘아부’라는 표현을 하고, 두류산 정상의 신 ‘마야부인’을 고려 태조의 비인 위숙왕후 라고 비유하는 등 불교를 외곡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 ‘불일암’과 ‘청학동’을 극찬을 한 것이다.
불일평전(청학동)과 불일산방을 지나 300미터정도 걷다보면 불일암이 나오는데 그 아래 깎아 지른듯한 바위에 새긴 ‘완폭대(翫瀑臺)’ 석각(石刻)이 있다. 그간 설화와 문헌으로만 전해져 온 완폭대 석각의 실물을 2018년 5월에 발견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고증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치원이 썼다고 전해지는 쌍계사 초입에 있는 ‘쌍계석문(雙磎石門)’과 세속의 벼슬아치들이 비루한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지리산 법왕리 화개천에서 귀를 씻으며 새긴 ‘세이암(洗耳巖)’석각은 선인들의 정신문화가 담겨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석각이다. ‘완폭대’는 불일폭포를 즐기면서 감상하는 바위라는 의미로 최치원이 시를 읊고 푸른 학을 부르며 노닐었다는 청학동 설화가 전해진다.
겸재 정선의 작품인 불일암폭포 그림에는 절벽에 위태롭게 돌출된 완폭대 바위가 묘사되어 있다.
완폭대 석각은 불일폭포 일원 청학동 설화가 사실에 가까움을 증명하는 유물 이라고 한다.
1611년 유학자 유몽인이 쓴 ‘유두류산록’ 이후 청학동을 찾아 불일암과 불일폭포를 답사한 선비들의 유람록 10여 편에는 완폭대 석각이 실존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 남주헌이 함양군수를 지내면서 1807년에 쓴 ‘지리산행기’부터는 완폭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 시기를 전후로 불일암의 쇠락으로 인하여 완폭대 석각도 흙에 묻히거나 수풀에 가려진 것으로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