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정상탑전은 쌍계사의 개산(처음으로 산문을 연 것) 설화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삼법과 대비 두 화상이 신라 성덕왕 23년(724)에 중국 불교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 대사의 정상(頭上:두상)을 모시고 와서,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봉안하라”는 불보살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와 정상을 봉안하고 산문을 연 데서 유래한다. 그후 신라 문성왕 2년(840)에 진감 선사가 쌍계사 창건 당시에 건물을 짓고 육조영당이라 하였다. 건물 안에 있는 육조정상탑은 7층으로 용담 선사가 세웠다고도 하며, 주변 목압사 터에서 옮겨 왔다고도 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건물을 받치는 기단 없이 툇마루를 두어 지면과 떨어뜨린 것이 특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형식으로 지어졌다. 기둥 간격이 매우 좁고 높이가 낮아 건물이 작은 데 비해, 기둥머리의 장식이 많고 커서 화려하고 장중해 보인다. 천장은 낮지만 건물 안의 기둥 장식들을 중앙으로 피어오르는 것처럼 만들었고, 탑의 위쪽에는 작은 집 모양의 닫집을 만들어 장엄한 느낌을 준다. 건물의 앞쪽에는 조선 후기 명필인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 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고산 화상이 1979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쌍계사 건물 가운데 균형미가 가장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