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선사는 계족정진鷄⾜精進의 대선사 벽송지엄선사碧松智嚴祖師의 심인⼼印을 이었다.
그는 평생을 눕지 않고 용맹정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닭이 서 있는 것처럼 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만 서서 다니는 수행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을 계족정진鷄⾜精進이라고 한다. 현재 쌍계사 성보박물관에는 한 아름이 좀 못되는 반질반질한 돌덩이가 있는데, 이 돌이 선사를 성불 시킨 위대한 돌이라고 한다. 큰 알처럼 생겼고, 손을 하도 타 까칠한 표면이 빛이 난다. 칠불암에서 주석할 때 밤중이 되면 돌을 짊어지고 경행經⾏하되, 쌍계사까지 가서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에 참배발원하고 돌아오는 고행을 실천함으로써, 수마睡魔를 조복시키고 조사관祖師關을 타파하였다.
돌을 지고 도를 닦던 어느날 호랑이를 만나게 되어 몸을 보시하고자 하였는데, 호랑이가 머리를 숙이며 거부하더니 이후부터 항상 곁에서 선사를 모시었다. 임종시에 호랑이와 제자들에게 유계遺誡하기를 “사람과 재물을 모아 낭비하지 말고 자갈을 산같이 모아 사리를 봉안하라”고 하였다. 선사는 1545년 12월8일 자정쯤에 입적했다. 선사의 부도는 아직도 유언대로 자갈로 쌓여 있다. 뒤에 사람들이 자갈 사리탑 대신 돌을 깎아 만든 석종으로 부도를 만들어 바꾸려 했다. 하지만 자갈 부도 앞에서 호랑이가 떡 버티고, 부도탑을 지키고 있었다. 사람이 지키지 않는 유언을 호랑이가 지켰던 것이다.
처능대각處能⼤覺스님은 제칠불암칠영전題七佛庵七影殿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청하⾭荷는 원래 옥과 같은 부용芙蓉이요, 찬 그림자 등계登階하여 벽송碧松을 의지했네. 청허淸虛의 성벽과 부휴浮休의 자취여. 추월秋⽉이 밝으니 느낌 또한 짙도다.”
청하⾭荷는 곧 법융法融의 호요, 부용은 곧 영관靈觀의 호이며, 등계는 곧 정심淨⼼의 호요, 벽송은 곧 지엄智嚴의 호이며, 청허는 휴정休靜의 호요, 부휴는 곧 선수善修의 호이며, 추월은 곧 조능祖能의 호이니, 이 일곱 대사의 진영을 칠불암의 관음전觀⾳殿에 모셨다.
추월조능선사는 화개에서 차를 음미하며 살고, 한 잔의 화개차를 마시고 입적한 불교계의 거두다. 쌍계사 칠불암七佛庵에서 더 올라가면 뒤에 옥보대가 있고, 서북쪽 언덕에 부휴스님의 치아탑이 있으며, 그 아래에 추월조능스님의 부도가 있다. 순수하고 검소한 성품일 뿐만 아니라 견고한 용맹정진의 큰 힘을 얻은 분으로 수행자들의 수행자세에 모범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