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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하동 쌍계사 화엄전-법상 스님의 사찰의 주련

쌍계사
2021-10-06 12:55
작성자
쌍계사
작성일
2021-10-06 12:55
조회
476

부처님 설법의 목적은 심해탈에 있다

마음이 번뇌서 벗어난 게 심해탈
우리 마음에 각 부처 성품 있으니
번뇌에 물들지 않는 순간이 부처



하동 쌍계사 화엄전 / 글씨 우송 민효식(友松 閔孝植 1926~?)

一光東照八千土 大地山河如杲日
일광동조팔천토 대지산하여고일 
即是如來微妙法 不須向外謾尋覓
즉시여래미묘법 불수향외만심멱
(한 줄기 빛이 동으로 팔천토를 비추니 / 대지산하가 해처럼 밝아지네. / 이것이 여래의 미묘한 법 / 모름지기 밖에서 찾지를 마라.)

일광(一光)은 하나의 빛을 말한다. 하나는 여일(如一)하다는 뜻도 있고, 일승(一乘)의 진리라는 뜻도 있기에 이어서 나오는 광(光)은 곧 진리를 말함이다. 그러기에 일(一)은 ‘참다운 진리는 하나다’라는 뜻을 포함한다. 진리의 말씀은 하나지 둘이 되면 어긋나기 때문이다. 

동조(東照)는 곧 일광동조(日光東照)를 말함이다. 일광동조는 일광변조(日光遍照)와 같은 맥락으로 햇빛이 어디에도 비추지 아니함이 없다는 표현이다. 팔천토(八千土)는 온 세상이다. 팔천토는 팔만사천 세계를 말하므로 부처님 법문도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한다. 중생이 가지고 있는 병이 팔만사천병이요, 중생이 가지고 있는 번뇌도 팔만사천번뇌이기에 병에 따라 약이 있으므로 법문도 팔만사천법문이 생겨나는 것이다. 

첫 구절은 미루어 짐작하건대 ‘법화경’ 서품에 나오는 가르침을 나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법화경’에서 상서(祥瑞)에 관한 질문에 보면 “이때 부처님께서 미간의 백호상으로부터 한 줄기 광명을 놓으시어 동방의 만팔천 세계를 비추시니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어서 밑으로는 아비지옥에 이르고 위로는 아가니타천에 까지 이르렀다”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를 번뇌로부터 구제하고자 갖가지 방편과 비유를 들어 법을 설하셨다. 그러므로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마음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함이다. 부처님 설법의 목적은 심해탈(心解脫)에 있는 것이다. 심해탈은 마음이 모든 번뇌에서 온전하게 벗어난 경지를 말하므로 이를 체득하면 순간순간 선정(禪定)에 들 수 있다. 북방불교 여러 경전의 서두에 부처님께서 갖가지 삼매에 드시고 이적을 나타내심은 모두 심해탈을 표현한 것이다. 

대지(大地)는 대자연의 넓고 큰 땅, 산하(山河)는 산과 큰 내를 말한다. 둘을 합치면 온 세상이므로 팔천토와 같은 표현이다. 해가 뜨면 온 세상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두루 비추기에 대지산하라고 한 것이다. 고일(杲日)은 밝은 태양을 말한다. 진리가 이 세상에 드리움에 뭇 생명은 비로소 고통에서 벗어날 길과 발판을 만나는 것이다. 정리하면 두 번째 구절은 온천지가 해와 같이 밝아진다, 부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나의 마음이 그와 같이 될 수 있다는 표현이다.

즉시(卽是)는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를 말하기도 하지만 이를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두 현상이 완전히 하나여서 불이(不二)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낸다. 진리[一光]로 세상을 밝게 비추시고자 하시는 부처님 말씀은 어떤 신(神)을 추종하라는 게 아니라 “너 자신 안에 있는 진성(眞性)을 알아차리면 너의 마음 안에도 불성이 있다”라는 것을 알게 하는 참다운 진리[杲日]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바로 여래의 미묘한 진리다.

미묘(微妙)는 언어로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하고 훌륭한 부처님 가르침을 말한다. 불수(不須)는 모름지기 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불용(不用)을 나타낸다. 향외(向外)는 바깥으로 향한다는 뜻이다. 만심(謾尋)은 속고 있는지도 모르고 찾는다는 것이므로 부질없다는 뜻이다. 자성(自性) 안에 일광(一光)과 고일(杲日)이 있음을 알지 못함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곧 마지막 구절은 자성시불(自性是佛)을 강조한 표현이다. 우리의 마음에 부처의 성품이 있으므로 마음을 청정(淸淨)케 하여 번뇌에 물들지 아니하면 곧 부처를 만날 수 있음을 말한다. 

이 게송의 출처는 확인되지 않지만,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에 고어(古語) 또는 고덕(古德), 선사(先師) 등으로 나타낸다. 인터넷에서는 버젓하게 ‘법화경’이 출처라고 언급된다. 이는 잘못된 소개다. 길을 인도할 때는 그만큼 길잡이가 중요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못 전해진다면 아주 곤란하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