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경상남도 울주군 상북면 천전리 428번지에서 아버지는 해주오공海州吳公 응수應守요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인데, 꿈에 어떤 스님으로부터 구슬 한 개를 전해받은 뒤 잉태를 하게 되어 1933년 계유년 12월 9일에 탄생하였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1945년 해방 되던 해, 당대의 대선지식인 범어사 동산대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여 1948년과 1956년 동산대율사를 계사로 사미계와 비구계를 각각 수지하시고, 강원에서 줄곧 삼장三藏을 연구하다가 당대의 대강백이며 대선지식인 고봉선사로부터 선교일여도리禪敎一如道理를 배웠다.
고산대선사는 어느날 다음과 같은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心行一場夢심행일장몽. 마음 작용은 한바탕 꿈이요.
息心卽是覺식심즉시교. 한 마음 쉰 것이 곧 잠깬 것이라.
夢覺一如中몽교일여중. 꿈과 잠깸이 한결같은 가운데
心光照大天심광조대천. 마음광명이 대천세계에 비추도다』
만하승림율사,영명,동산혜일,석암율사로 이어진 청나라 계맥과 대은율사로부터 시작된 용성 동산 석암율사로 이어진 해동계맥을 고산대선사께서는 1972년에 범어사계단에서 석암율사로부터 전계를 받으셨다. 1954년 부산 범어사에서 6안거安居를 성만 하신 후, 18년 동안 해인사, 직지사, 청암사 등에서 잇따라 안거를 성만하셨다.
서울 조계사, 영천 은해사, 하동 쌍계사 주지를 역임하셨고, 1999년 조계종의 혼란스러웠던 때에 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을 역임하시어 종단을 안정 시키셨다.
2006년 조계종의 최고 법계인 대종사 품서와 원로의원에 추대되셨고. 2008년에는 전계대화상, 2013년 9월13일에는 쌍계총림 초대방장으로 추대되셨다.
1975년 삼신산 쌍계 산문에 오시어 원적에 드시기 전까지 선, 교, 율, 차 와 범패를 일상으로 실천하시며, ‘불식촌음不息寸陰’(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의 고산가풍을 세우셨다.
선사님께서는 견고한 성품과 강한 의지력으로 한번 작심한 일은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룬다고 해서 생전에 ‘지리산의 무쇠소’라 불려지기도 하셨다.
1976년 부산 혜원정사와 부천 석왕사를, 1998년에는 통영 연화사 등을 창건하는 등 지역 포교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시며 실천불교에 새로운 지평을 여셨다.
불기2565년 3월23일(음2.11.) 오전 8시 46분 쌍계사 방장실에서 법랍74세 세수89세로 부처님과 함께 살았고 부처님 마음으로 베풀었던 한 생애를 꽃잎처럼 떨구며 원적에 드셨다.
『春來萬像生躍動 봄이오니 만상이 약동하고
秋來收藏待次期 가을이 오니 거두어 다음을 기약하네
我於一生幻人事 내 평생인사(人事)가 꿈만 같은데
今朝守攝歸故里 오늘 아침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네.』라는 열반송涅槃訟을 남기셨고, 산천초목은 슬퍼하였고 태양은 빛을 잃고 보슬비만 내렸다.
저서와 역서로는 우리말 불자 수지독송경,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강의, 대승기신론 강의, 사람이 사람에게 가는길, 지옥에서 극락으로의 여행, 머무는 곳 없이 마음을 내라, 나뭇가지가 바람을 따르듯이, 자서전 지리산 무쇠소, 돈황본 육조단경 강의1,2,3권, 보살계 법문집(梵網經 盧舍那佛說菩薩心地戒品), 관음찬이십송(觀音讚二十頌), 지장찬이십송(地藏讚二十頌), 음다 삼십오송(飮茶 三十五頌), 다도의범(茶道儀範), 관세음보살 영험록, 소원을 이루는 법, 선 깨달음의길, 고산스님 노래시집 마음이 곧 부처다, 금강경오가해 강의 전7권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