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속의 쌍계사

금당에 혜능조사의 머리를 봉안하다

ssanggyesa
2010-12-01 15:57
작성자
ssanggy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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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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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에 혜능조사의 머리를 봉안하다



[오마이뉴스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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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개울이 흐른다 하여 이름 지어진 쌍계사
ⓒ2004 이종찬

늦가을 스러져 가는 단풍이 더 곱다고 했던가. 마지막 남은 목숨의 끈을 애써 부여잡고 천천히 생명이 꺼져 가는 순간, 그 순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안타깝고 가장 고운 때가 아니던가. 서녘하늘을 발갛게 물들이며 어스름 속으로 빨려드는 늦가을 노을이나 마지막 남은 잎새 하나가 파르르 떠는 모습, 그 모습이 얼마나 아찔하도록 슬프고 아름다운가.

쌍계사로 가는 길목. 섬진강을 따라 은어떼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십리 벚나무 길에도 벚꽃보다 더 곱고 아름다운 단풍꽃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길 위에 떨어져 뒹구는 단풍꽃들이 섬진강변으로 훠이 훠어이 날아오르다가 이내 맥없이 단풍비가 되어 투둑 투둑 떨어진다.

쓸쓸하다. 갑자기 '인생무상'이란 낱말이 떠오른다. 그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구나 한 번은 저 낙엽처럼 이 세상과 이별해야 하지 않겠는가. 싫든 좋든, 그때까지도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원한이 있든 없든, 끝내 이루지 못한 애달픈 사랑이 있든 없든, 잘 살았든 못 살았든, 언젠가는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두 개의 개울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 쌍계사(雙磎寺). 쌍계사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1200여년 앞, 신라 성덕왕 때 '대비'와 '삼법'이라는 두 화상이 당나라에서 육조 혜능조사의 머리를 모시고 왔다가 범의 안내를 받아 이곳에 옥천사(玉泉寺)라는 절을 세우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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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원이 지팡이를 들어 썼다는 '쌍계석문'
ⓒ2004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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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계사 일주문에는 '삼신산 쌍계사'란 글씨가 걸려 있다
ⓒ2004 이종찬
그 뒤 신라 문성왕 2년, 서기 840년에 당나라에 가서 선종의 법을 잇고 돌아온 진감국사(眞鑑國師) 최혜소(崔慧昭)가 차(茶)의 종자를 가져와 절 주위에 심고 절을 크게 일으켰다. 그때 헌강왕이 이 절에 '쌍계'라는 호를 내려 학사(學士) 최치원(崔致遠)으로 하여금 바위에 '쌍계석문'(雙磎石門)이라는 네 글자를 쓰게 하여, 그때부터 쌍계사로 불려졌다고 한다.

쌍계사가 자리하고 있는 화개면의 화개(花開)라는 이름 또한 고려 때부터 사찰로 가는 길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곳의 벚나무는 일제 강점기 때 억지로 심어진 그런 '사꾸라'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자생하고 있었던 토종 벚나무임에 틀림없다.

쌍계사 들머리에 들어서자 오래 묵은 은행나무가 노란 금비를 툭둑 투둑 떨구며 길손을 맞이한다. 은행나무 주변에는 더덕과 산나물 비빔밥, 파전, 동동주 등 먹을거리를 파는 집들이 길손을 애타게 부른다. 나중에요, 하면서 쌍계교를 건너자 비좁은 오솔길 양쪽에 '쌍계'(雙磎)와 '석문'(石門)이라는 검붉은 글씨가 새겨진 큰 바위가 곰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다.

저 돌문이 바로 신라 최고의 문장가로 불리던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이 지팡이를 들어 썼다는 '쌍계석문'이다.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돌문을 지나지 않고 오른 편에 새롭게 난 반듯한 길을 따라 쌍계사로 올라가고 있다. 돌문을 지나 갈색 낙엽이 수북히 쌓인 깊은 계곡을 바라보며 조금 더 올라가자 차 시배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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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문을 지나면 오래 묵은 은행나무 몇 그루가 노란 번뇌의 잎새를 떨구고 있다
ⓒ2004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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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을 오르면서 속세의 티끌을 하나 둘 떨구어보자
ⓒ2004 이종찬
이 차 시배지가 신라 때 '대렴'(大廉)이라는 사람이 당나라에서 차 종자를 가져와 처음으로 심었던 곳이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늦가을 해가 붉은 노을을 물고 지리산 너머로 서서히 기울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스한 차 한 잔이 눈앞에 자꾸만 밟힌다.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라고 쓰여진 일주문을 지나자 또 몇 그루의 오래 묵은 은행나무가 노오란 잎새를 거의 다 떨군 채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노오란 은행잎 몇 개를 주우려다 나도 모르게 손길이 멈추어진다. 문득 떨어져 뒹구는 은행잎이 마치 은행나무가 떨군 속세의 땟자국 같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가 지키는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자 팔영루가 길을 가로막는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기와문인 팔영루는 쌍계사를 세운 진감국사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써 '어산'(漁山)이라는 범패를 작곡했다 하여 이름 붙여진 누각이다.

범패? 안내자료에 따르면 범패란 재(齋)를 올릴 때 쓰이는 불교 음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곡, 판소리와 더불어 3대 성악의 하나라고 적혀 있다. 또한 스님들이 재를 올릴 때 요령을 흔들며 읊는 '염불' 또한 범패의 한 형식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 팔영루에서 범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범패 명인들을 배출하는 교육장 역할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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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정사 팔각구층탑을 흉내 내 만든 구층석탑과 만든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거대한 석등
ⓒ2004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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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 제 500호 쌍계사 대웅전
ⓒ2004 이종찬
팔영루 옆에 놓인 계단을 올라서면 대웅전 아랫마당에 1990년대 월정사 팔각구층탑을 흉내 내 만든 구층석탑과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거대한 석등이 눈길을 잡아끈다. 근데, 아무리 바라보아도 살갑게 느껴지지가 않고 왠지 낯설기만 하다. 마치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멍청하게 서 있는 것처럼.

대웅전(보물 제500호) 앞마당에는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 국보 제47호)가 대웅전의 지키미처럼 우뚝 서 있다. 이 공탑비는 진성여왕이 진감국사의 공덕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최치원에게 글을 짓고 쓰게 한,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금석문(金石文, 금속이나 돌로 만든 각종 유물에 있는 명문)이라고 한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이 공탑비에는 '그(진감국사)가 범패를 매우 잘하여 금옥 같은 소리가 구슬프게 퍼져 나가면 상쾌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하여 능히 제천(諸天)을 기쁘게 할 만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공탑비는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여기저기 깨어지고 금이 가 쓸쓸하기 그지없다.

대웅전 왼 편에 45도로 촘촘촘 깔린 계단 주변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이 서서히 깔리는 어스름을 물고 씨름을 하고 있다. 그 계단 끝자락에 중국의 승려 혜능(慧能) 조사의 머리(頭像)를 봉안했다는 금당(金堂)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그래서일까. 금당 안에는 부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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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조 혜능조사의 머리를 봉안했다는 금당
ⓒ2004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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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 안 부처님 대신 서 있는 육조정상탑
ⓒ2004 이종찬
금당 안에 부처님처럼 우뚝 서 있는 육조정상탑을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으스스한 추위에 고개를 돌려보니 경내 곳곳에 어둠살이 끼기 시작한다. 어둠살을 물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울긋불긋한 단풍잎들과 날아갈 듯한 기와지붕들이 참 잘 어울린다. 그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저랬으면 정말 좋겠다.

늦가을 어둠이 서서히 깔리는 쌍계사. 쌍계사를 등 뒤에 남겨두고 어두워오는 세상을 향해 터벅터벅 내려오자니 영 마음이 껄끄럽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 무언가를 버려두고 서둘러 도망이라도 치는 것만 같다. 그래. 마음이 이렇게 허전할 때에는 쌍계사 돌문을 다시 바라보며 더덕을 안주 삼아 동동주라도 한 사발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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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어둠이 깔리는 산사
ⓒ2004 이종찬

/이종찬 기자


덧붙이는 글
☞가는 길/1.서울-대전-전주IC-남원-구례-19번 국도-연곡사 입구-화개면 좌회전-화개천-쌍계교-쌍계사

※구례, 하동에 가면 쌍계사로 가는 버스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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