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속의 쌍계사

쌍계사 주지 성조스님

ssanggyesa
2011-01-24 18:27
작성자
ssanggyesa
작성일
2011-01-24 18:27
조회
7396

쌍계사 주지 성조스님


한겨울 스님은 밀짚모자를 쓰고 방을 나섰다. 사계절을 쓴다고 한다. 의아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따가운 여름 햇살에도 경내 풀을 매는 조실 스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사중(寺中)의 대중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일까.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잠 못 드는 그대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 듯이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생사의 밤길은 길고도 멀어라(법구경)’. “부처님 말씀 중에 진리 아닌 것이 없지만 60이 넘은 지금도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절에 가면 한학(漢學)을 더 공부할 수 있다는 말에 13살에 입산출가해 부처님 가르침에 매혹돼 50여년 부처님의 은덕을 받고 있다는 성조(性照)스님. 지난 13일 조계종 제13교구본사 하동 쌍계사 반야실(般若室)에서 스님을 만나 수행자의 길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수행자 본분 잊지 않는 것이 첫째입니다”

   

  漢學 하고 싶어 입산했다 부처님 법에 매혹된 50년

 “자성 깨달으면 인천의 스승…나쁜 짓 할 수 있겠나”

   

스님은 출가 전 어릴 때부터 조부의 영향으로 유교 경전을 많이 봐 왔지만 ‘마음자리(自性)를 깨치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은 들어보지 못했다. <초발심자경문> <치문>을 공부하며 큰스님들의 법문을 많이 듣던 열 여덟아홉살 무렵. “자신의 본성(佛性)을 회복하면 부처가 되고 나쁜 짓을 하려해도 안해지는 … 그런 말씀에 매혹돼서 기쁨마음으로 평생을 수도자로 지낼 것을 결심하게 됐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는 ‘아! 내가 젊을 때는 조금 공부를 소홀 했구나’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 최소한 나 한 사람으로 인해 불교에 누를 끼치지는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돌다리를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을 정도’로 완벽을 기하는 스님의 거처여서인지 반야실은 다소 엄숙하고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조심스러웠다.

“‘승려본분 불망(不忘)’ ‘게율수지 생명처럼 여기자’ ‘인과법칙을 항상 생각하자’ ‘삼보정재를 내 몸의 피처럼 여기자’ ‘자기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자’ 이상의 다섯 가지 말고도 수행자가 지니고 살아야 할 교리나 덕목, 의무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소홀해지기 쉬운 법행(法行)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불교의 전부, 수행자의 상징으로 비춰지는 스님들이기에 다소 딱딱하더라도 스님들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문을 연 스님은 수시로 ‘스님의 본분’을 강조하며 말을 아끼려 했다.

“승려의 본분을 잊지 말자는 것은 부처님의 제자이기에 언행이 항상 진실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생교화를 위한 수행정진 외의 것은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승려의 본분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계율을 수지한 수행자로서 계율을 큰 보배로 생각하여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것을 탐내 그 보물을 잠시라도 땅에 내려놓는 것은 그 귀중한 보물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평범한 얘기 같을수록 스님은 더 진지해 진다.

“출가 수행하여 얼마만큼 살다보면 그만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법칙을 망각하고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제자로써 인과법칙을 망각하거나 무시한다면 출가수행자 더 나아가서는 불제자라 할 수 없습니다. 이세상이 자기의 이익, 집단의 이익, 가정의이익 등 자기 무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옳고 그름을 떠나 모든 것을 집중하는 것을 보고 삶 자체를 다시 생각게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로 살아가기로 맹세한 스님들마저 인과법칙을 망각하고, 아니 내 팽개쳐버리듯 멀리하고 자기이익과 욕심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 정말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파옵니다. 같은 수행자로서 승려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가 종종 들어 나 자신은 어떤가 하며 자성의 계기로 삼기도 합니다.”

 

  계율을 생명처럼 수지

  인과법칙을 항상 생각

  삼보정재는 내 몸속의

  피같이 생각해야 한다

  항상 다짐하며 ‘당부’

 

특히 삼보정재 대목을 얘기할 때는 더욱 더 숙연해졌다.

“삼보정재를 내 몸의 귀중한 피처럼 살처럼 아주 귀하게 생각하지 않고 낭비하는 것을 볼 때 부처님 뵙기가 부끄럽고 시주자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옛날 어른 사 스님들께서는 논 한 평, 밭뙈기 하나 ,임야 한 평을 사기위해 송죽(松竹)을 끓여 드시면서 절약하여 재산을 모아 오늘의 사찰부동산을 장만한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세대에 와서 는 어떤가요?”

스님은 땅 한 평 샀다는 얘기를 들어보기 힘 드는 현실에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우리의 역량과 역할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당부하듯 말했다. “적당히 쉽게, 편하게 살지 말고 비록 가시밭길일지라도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라면 기꺼이 가야하고 어려울 일일지라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는 취지. “포교에 우리의 모든 것을 집중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폭풍우에 꺼져가는 촛불을 마냥 바라만보고 있을게 아니라 그 촛불을 살려내고 더 밝게 비치게 해야 하지 않나?” 부처님 가르침을 어두운 세상을 훤히 비추는 커다랗고 밝은 그리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로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점이다.

스님은 정성이 지극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오래 전 실감했다. 미주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할 때다. ‘병명을 모르니 투약도 할 수 없다, 회생 가능성이 20%에 불과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할 정도로 사경을 헤맬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사를 믿고 편안히 있었는데…’ 눈 한 번 뜨려면 10여 분 용을 써야 할 정도로 힘겨울 때 ‘나는 불제자다. 부처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 침상에 누운 채 관음기도를 시작했다.

“내가 잠을 자서 뭐 하겠나? 죽을 놈이 잠을 자서 뭐하나? 내일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잠을 자는 것인데, 죽을 놈이 잠은 자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도를 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나에게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앞으로 더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그렇게 밤낮으로 기도하기를 6일째 기적이 일어났다. 생존가능성이 50%밖에 안된다고 말하던 의사가 나보다 더 기뻐하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절박한 만큼 정성을 다 하면 이루어진다. 절실하면 불보살의 가피가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막 출가했을 때 어른 스님들이 당부를 지켜내지 못한 점이다.

“지금은 주지를 못하면 ‘무능력자’로 보지만 주지하면 ‘타락한 놈’으로 생각할 때가 있었죠. 선방 수좌로 철저했던 유몽(惟夢)스님이 많은 영향을 주셨어요. ‘주지해서는 안된다’ ‘주지하려면 속가로 가서 가정 꾸리고 부모봉양이나 하라’ ‘참선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또 당부하셨습니다. 부처님 제자로서 절대권력에라도 아부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이라도 고개 숙여서 안된다고 하신 분입니다. 부처님과 존경하는 스님 앞에서는 고개 숙이지만 그 이하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는데…. 은사 정대 큰스님의 사고사찰 재산관리인 천거, 다시 고산 큰스님의 교구본사 쌍계사 주지 천거는 거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경(死境)을 넘어선 이후 수행자로서의 삶은 쌍계사 조실 스님을 모시고 대중을 외호하며 당당히 사판(事判)의 길을 가고 있다. 기꺼이 해야 할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거듭하면서…. “삶과 죽음, 손등과 손바닥 차이 밖에 안되지 않는가.”

“心卽能解心 法卽可解法 今付解心法 無心亦無法(마음이 곧 마음을 알아보고 법이 곧 법을 알아 본다, 마음도 없고 법도 또한 없다)” <고산 대종사>

폭설에 사상 최저 기온 기록이 연일 깨지고 있지만 반야실(般若室) 뜨락에는 따스한 기운이 돌고 있었다.

 

성조스님은 …

상반기 불교교양대학 개설

어린이법회 활성화에 주력

지난해 12월2일 쌍계사 주지로 취임한 성조스님의 일성은 “조실 스님을 모시고 선원 강원 대중 스님을 외호하면서 수행포교도량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었다. 쌍계사의 지리적 여건을 감안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선원과 강원은 40여명이 정진하고 있을 정도로 이미 자리를 잡았지만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포교활동은 산중 소규모 사찰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주지 상훈스님이 범패전수관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문화예술회관 건립과 우회도로 건설 등 불사계획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성조스님의 포교활성화 계획은 ‘쌍계사의 제2의 도약’의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하동읍내 포교원 개원과 함께 불교교양대학 운영을 염두에 두고 본사 삼직 스님들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교양대학은 포교원 개원이전 읍내의 기존 시설을 대여해서라도 우선 운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어 빠르면 올 상반기 개강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어린이청소년 포교 활성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스님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불교의 미래, 불법(佛法)의 영속을 위해서는 다른 예산을 줄이더라도 인력충원 등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성조(性照)스님은 1963년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서 동암스님을 계사로 수계이후 경기도의 안성 석남사, 용인 백련암, 경남 고성의 운흥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1980년대 10여 년 간 미주에서 해외포교활동 경험을 갖고 있으며 총무원의 사서실장과 사회부장 등 중앙종무기관 소임을 맡기도 했다. 2003년 쌍계사 조실 고산(山) 대종사와 인연이 돼 경담(京潭)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쌍계사=김선두 기자 sdkim25@ibulgyo.com

  

[불교신문 2691호/ 1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