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속의 쌍계사

[큰스님의 삶과 수행 | 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 고산혜원(山慧元) 대종사] -1

ssanggyesa
2010-12-01 14:19
작성자
ssanggyesa
작성일
2010-12-01 14:19
조회
6215
꿈을 깨십시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견디고 참고 기다리라’ 정신으로 대중과 호흡하며 정진
유철주 불교 전문 자유기고가 jayu@buddhism.or.kr
 

 

 

 

통영 연화도에서 고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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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루법회(음력 6월 1일)가 열린 부산 혜원정사 대웅전. 조실(祖室) 고산혜원(山慧元) 대종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고는 이내 불자들을 위한 축원(祝願)을 시작했다. 스님은 이후에도 법상(法床)에 오르기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고 불자들과 함께 기도를 올렸다.

사찰의 조실 스님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기도하는 것이 낯설다. 사실 원로 스님은 대부분 법회에서 법문만 한다. 그러나 고산 스님은 달랐다. 불자들은 “고산 스님의 ‘힘’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고 귀띔했다. 고산 스님은 1990년대 후반 총무원장을 역임하면서도 새벽예불과 108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법회가 끝나고 스님은 대중과 사찰 공양실에서 공양을 같이 하고 주석처인 방장실에서 글을 보고 있었다. 잠시 시간을 내달라는 청을 드리니 “들어와 차나 한잔 하라”며 방문을 열어주셨다.

▼ 법회를 직접 주관하시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대중과 늘 함께하려 합니다. 새벽에 도량석(道場釋)을 하는 동안 108배를 하고 참선을 합니다. 새벽예불이 끝나면 법당을 돌면서 참배하고, ‘원각경’과 ‘관세음보살 보문품’ 등을 읽습니다. 또 시간이 되면 참선을 하고 맨손체조도 합니다. 아침공양 후 틈틈이 텃밭과 화단을 가꾸고 책을 봅니다. 오후 일정도 비슷합니다. 하루가 금방 지나가 바쁘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습니다.”

고산 스님은 매달 음력 초하루는 부산 혜원정사, 음력 8일은 부천 석왕사, 음력 15일은 하동 쌍계사, 음력 24일 관음재일은 통영 연화사에서 대중과 함께 기도한다. 모두 스님이 조실로서 후학과 불자들을 제접(提接)하는 도량이다. 이렇게 한 달 내내 일주일씩 4개 사찰을 순회한다. 한결같다는 얘기를 듣지 않을 수 없다.

▼ 출가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광복 1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제 나이 12세였습니다. 어머니가 그리워 참을 수 없었습니다. ‘명심보감’을 보면 눈물이 안 나올 거라는 어른들의 말씀에 책을 봤지만,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나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양산 통도사로 갔습니다. 구하 스님은 더 크면 오라고 하셨습니다. 며칠 뒤 아버지가 저를 부산 범어사 동산 스님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동산 스님은 ‘왜 이제 왔느냐’며 맞아주셨어요. 동산 스님에게 ‘스님 제자가 되면 우리 엄마와 만나게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스님은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범어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는데 먼저 출가한 행자들이 밥도 못하고 불도 잘 못 지핀다고 구박해서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갔더니 아버지가 왜 왔느냐고 호통치셨어요.”

 

 

범어사 도감을 볼 때의 사진. 맨 앞이 동산 스님이고 세 번째 줄 맨 오른쪽이 고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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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동산 스님 가르침 가슴에 새겨

다시 두 형이 있는 부산으로 가서 형들이 일하던 양복점을 시작으로 시계점, 서점 등에서 일했다. 어느 날 형수가 사주를 봤더니 기술자나 스님이 될 사주인데 특히 스님이 되면 많은 제자를 가르치며 살 거라고 했단다. 고민 끝에 범어사에서 정식으로 출가했다. 1945년의 일이다.

▼ 행자생활이 많이 힘드셨지요.

“13세에 출가해 3년간 행자생활을 하면서 매일 대중예불이 시작되기 전 법당에 가서 108배를 했는데 일 배 일 배마다 어머니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원했습니다. 1948년에 사미계를 받고 얼마 뒤 부산 기장 해불암으로 갔습니다. 농사지으며 틈틈이 정진했는데 나중에는 ‘요리사’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양주 소임을 잘 살았습니다. 밥을 지을 때 첫째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이고, 둘째는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고, 셋째는 나의 심신을 단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밥도 잘됐습니다. 그 후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받고 본격적으로 참선과 경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