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속의 쌍계사

[큰스님의 삶과 수행 | 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 고산혜원(山慧元) 대종사]-2

ssanggyesa
2010-12-01 14:20
작성자
ssanggyesa
작성일
2010-12-01 14:20
조회
6290
“꿈을 깨십시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견디고 참고 기다리라’ 정신으로 대중과 호흡하며 정진
 

 

 

 

 

1 시간이 날 때마다 텃밭을 가꾸는 고산 스님. 2 1977년 석암 스님(가운데)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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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동산 스님에게 매일 ‘선요(禪要)’를 배워가며 참선했다. 동안거에는 하루 12시간씩 정진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스님은 새벽예불, 도량청소, 오전정진, 사시마지(巳時麻旨), 오후정진, 저녁예불, 저녁정진, 취침의 순서로 어김없는 규칙생활을 이어갔다.

▼ 은사인 동산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요?

“모범적인 대중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도량석을 하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모든 전각을 돌며 참배했고 마지막에 대웅전에 와 대중과 함께 새벽예불을 하셨습니다. 아침 공양을 하고는 가장 먼저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청소했지요. 또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선방에 가서 정진하셨습니다. 일과를 꾸준히 하다 보니 누구든 스님의 모습을 보고 배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산 스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감인대(堪忍待·견디고 참고 기다리라)’의 정신으로 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아직도 저는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 고봉 스님에게 전강(傳講·제자로 인정함)도 받으셨습니다.

“범어사에 있을 때 고봉 스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스님께 상을 차려 공양을 올렸는데 스님이 공양 차린 사람이 누구냐고 묻더군요. 제가 올렸다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저를 잘 보셨나 봅니다. 하루는 고봉 스님이 스님의 맏상좌인 우룡 스님과 저를 불러 ‘둘은 경(經)을 보라’고 하셔서 ‘능엄경’ 공부부터 했습니다. 그 뒤 합천 해인사, 김천 청암사, 부산 범어사, 울산 태화사 등에서 고봉 스님을 모시고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15년을 공부하고 직지사에서 전강을 받았습니다. 그때 고봉 스님으로부터 고산이라는 법호를 받아서 지금도 혜원이라는 법명보다 고산이라는 법호를 쓰는 것입니다.”

고봉 스님은 선(禪)과 교(敎)에 두루 능했던 선지식이다. 당대의 대선사(大禪師)인 전강 스님과 선문답(禪問答)을 자유롭게 주고받았고 제자들을 가르칠 때도 막힘이 없었다고 고산 스님은 회고했다. 고산 스님은 또 석암 스님으로부터 전계(傳戒)를 받았다. 동산 스님과 고봉 스님, 석암 스님을 한꺼번에 스승으로 모신 것은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선, 교, 율(律) 각 분야에서 최고의 선지식이었기에 고산 스님은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 종단의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으로서 후학들에게 계를 내려주는 막중한 소임을 맡고 계십니다. 수행자들에게 계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수행자가 계를 청정하게 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집 지을 때 하는 기초공사가 수행자에게는 바로 계입니다. 또 옛 어른 스님들은 그릇을 바로 놓아야 물이 많이 담긴다고 하셨습니다. 계가 수행의 바탕이라는 말씀이지요. 이와 함께 그릇에 담긴 물은 흔들리지도 않아야 합니다. 바로 놓인 그릇에 지혜의 달이 크게 비칠 것입니다. 그래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은 늘 같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전계대화상은 계를 전하는 종단 최고의 계사(戒師)로 계단(戒壇·수계식을 위해 쌓은 단)의 설치와 운영, 수계식 등을 관장하며 원로회의의 추천을 받아 종정 스님이 위촉한다. 스님은 2008년 10월부터 조계종 전계대화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