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속의 쌍계사

[큰스님의 삶과 수행 | 조계종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 고산혜원(山慧元) 대종사] -3

ssanggyesa
2010-12-01 14:21
작성자
ssanggyesa
작성일
2010-12-01 14:21
조회
6817
“꿈을 깨십시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견디고 참고 기다리라’ 정신으로 대중과 호흡하며 정진
 

 

 

 

 

법회에서 불자들을 위해 축원을 하는 고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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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이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꿈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탐진치’ 속에 사는 것은 잠꼬대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한심하고 슬픈 일입니까? 꿈을 깨야 합니다. 꿈을 깨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고 깨달음입니다. 수행자가 해야 할 일 역시 중생이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꿈에서 깨어날 때 지금 각자 서 있는 자리가 깨달음의 자리입니다. 우리 수행자들은 특히 자신의 깨달음과 함께 남을 위해 사는 삶이 중요합니다.”

▼ 어떤 화두로 공부를 하셨나요? 정진 중에 경계를 체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동산 스님께서 주신 ‘이뭣고?’ 화두로 공부했습니다. 자나 깨나 ‘이뭣고?’였는데 김천 청암사에서 어느 날 경계가 느껴졌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데, 모든 세상이 보였습니다. 절에 오고 있는 신도들도 보였습니다. 고봉 스님과 경봉 스님께 여쭈었더니 더 공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3개월 뒤 다시 두 분께 말씀드리고 인가(印可)를 받았습니다.”

1966년 음력 4월 20일 새벽예불이 끝나고 고산 스님은 한 시간 동안 관음정근(觀音精勤)을 하고 이산 혜연선사의 발원문을 읽은 다음 청암사 보광전 법당에서 참선에 들었다가 경계를 느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스님이 설명한 대로 다시 정진을 시작했다. 3개월 뒤 마침내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심행일장몽 식심즉시교 몽교일여중 심광조대천(心行一場夢 息心卽是覺 夢覺一如中 心光照大千)’, 즉 ‘마음 작용은 한바탕 꿈이요, 한 마음 쉰 것이 곧 잠깬 것이라. 꿈과 잠깸이 한결같은 가운데 마음 광명이 대천세계에 비추도다’였으니 앞서 말한 대로 스님은 꿈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1966년 음력 7월 10일이었다. 스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고봉 스님에게 게송을 말씀드리고 ‘이 우주에 오직 나 하나뿐’이라고 했다. 고봉 스님은 “이제 됐다”고 했다. 고산 스님은 경봉 스님에게도 갔다. 경봉 스님 역시 인가해주었다.

그 후 스님은 1977년 하동 쌍계사에서 정진할 때도 ‘산하대지비로체 초목함영석가행 일월성숙제불안 쌍계유수고산심(山河大地毘盧體 草木含靈釋迦行 日月星宿諸佛眼 雙磎流水山心)’, 즉 ‘산하대지는 비로자나 부처님의 몸이요, 초목과 준동함영은 석가 부처님의 작용이로다. 일월성숙이 모든 부처님의 눈이요, 쌍계에 흐르는 물은 고산의 마음이로다’는 게송을 읊기도 했다.

 

부처님 광명 통해 직접 계를 받는 ‘서상수계’

▼ 같이 공부하신 스님 중 기억에 남는 분은….

“30여 명의 도반이 지금은 거의 다 떠나, 우룡 스님과 보성 스님(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등 몇 명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구수한 입담을 가진 대흥사 조실 천운 스님마저 떠났습니다. 우룡 스님은 함께 경책을 하며 어려울 때 항상 옆에서 저를 부축해주고 위로해준 사람입니다. 보성 스님도 해외 성지순례는 물론 국내 여러 사찰에서 함께 공부했습니다. 먼저 입적하신 해인사 일타 스님과도 밤새 토론을 했습니다. 모두 제 공부에 도움을 준 소중한 인연입니다.”

스님은 특히 보성 스님과 정진하며 부처님 광명을 통해 직접 계를 받는 서상수계(瑞祥受戒)를 하기도 했다. 고산 스님은 보성 스님과 같이 쌍계사 대웅전에서 7일 용맹기도를 시작한 후 5일째 되던 날인 1988년 음력 7월 21일 오후 3시에 삼존불(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미륵보살) 아래 금자(金字) 사구게가 허공에 나타나는 체험을 했다. 사구게는 ‘심직명지계 심곡명훼범 직심근수행 이리구원성(心直名持戒 心曲名毁犯 直心勤修行 二利俱圓成)’, 즉 ‘마음이 곧으면 계를 가짐이요, 마음이 굽으면 계를 범함이라. 곧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수행하면 자리와 이타를 원만히 이루리라’는 말이었다.